시댁에서 맞이하는 설명절이다.
엊그제 내려오기 전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영 힘이 없으셨다.
"어머니, 저희 내일 내려가요."
"그래."
"어디 편찮으세요? 어머니 목소리가 안 좋아요."
"아니다. 괜찮다. 조심히 오너라. "
보통 '힘이 없다', '아프다', '잠을 못 잤다'
말씀을 잘해주시는 어른이 그냥 괜찮다고 하시니
더 신경이 쓰인다.
남편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영 기운이 없으시네. 혹시 아는 거 있어?"
"글쎄, 또 뭐 만드신다고 애 많이 쓰셨나?"
그 말을 듣고 나니 모든 것이 이해된다.
우리 챙겨 보낼 반찬 여러 가지, 또 손 크게 만드셨겠구나 싶다.
그래도 예전 같으면,"내가 이 반찬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하셨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으시단다. 이 말은 왜 또 곧이 들리지 않는지..
'뭐 하러 이렇게 고생하시냐', '하시지 마시라'는 그런 말이 힘들었다는 말씀도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께 하시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외려, 어머니 반찬이 맛있어 좋아하고 은근히 기대하고, 또 늘 반가워하는 쪽이다.
자칭 타칭 철없는 며느리다.
시댁에 와 보니 역시나 상황은 그랬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총각김치, 무생채, 연근조림, 땅콩조림, 우엉구이무침,
냉이 된장, 고깃국, 도라지무침, 시장에서 맞췄다는 강정까지.
양은 또 좀 많은가?! 진짜 그 재료 하나하나 다듬고,
물에 담가 쓴 물 빼고.. 그것만 해도 어마무시한 공정이다.
난방효율 안 좋은 옛날 집이라 난방비 아끼느라 집안 곳곳이 냉골인 사정까지 감안하면,
정말 고역이었음에 틀림없다.
내가 철없는 며느리이길 선택한 이유는 어머니가 정말 원하시는 것,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을 존중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분의 의도를 존중하고 그저 감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이제 고추장은 정말 못하겠다'는 어머니 말씀에 하시지 마시라고 말했다.
다른 것은 못 미더워서 자식들 먹일 수 없으시단다.
나는 어머니가 몸도 마음도 편하게 당신 삶을 즐기셨으면 좋겠다가도,
우리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아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건 내 바람이고.
'다른 것은 믿을 수 없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런 어쩌면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은 나의 의도를 세우기 전에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봤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어머니에게는 무엇이 힘이 되고 어떤 경우에 그렇지 않은지를 몇 번이고 여쭤보고, 내가 조금은 알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들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왔다갔다 갈팡질팡 오르락내리락하는 매 순간의 굽이굽이에서도 나는 지금처럼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며 꼿꼿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모르겠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