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한 번 가볼까? 어떤 집이 좋을까?
연휴라 부동산도 쉴 것 같았다.
그 전에 우리 그 동네부터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따져보기 전에,
진짜 우리가 원하는 곳인지 직접 보는 게 먼저니까.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말했다.
“지금 그 집 나와 있는 부동산에 연락했어.”
좀 전까지 설레고 신나기까지 했던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화가 올라왔다.
“응? 아니, 그 동네부터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직 가보지도 않았잖아.”
“막 부동산에 문자로 물어봤어.”
남편은 나를 한 번 쳐다봤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휴대폰만 보고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와, 진짜 내 말 안 들어준다.’라고 말하고
대화를, 아니 ‘말하기’를 멈추고 방에 들어왔다.
그래, 나 삐쳤다. 답답하다.
혼자 앉아 조금 전 일을 떠올린다.
오늘 글의 소재는 ‘내 말 안 듣는 남편’이 되려나 싶기도 하지만,
남편이 내 말을 일부러 무시한 것도, 못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 그렇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피해자가 된 나는
무시당했다고 느끼고 대화가 거절당한 듯 경험했다.
내 생각과 느낌을 묻는 것도 없고,
눈 맞춤은커녕 추임새조차 없었다.
그런데 나 또한 그에게 그러지 않았던가. 짐작하겠지만, 사실 이런 말을 하면서 좀 찔린다.
남편뿐 아니라 아이들, 친구들, 부모님 얘기에
그런 식으로 반응하며 듣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듣는 척하면서 딴생각하거나,
고개도 안 들고 “응” 하고 넘긴 적들.
그 사람이 어떤 지보다는
내 머릿속 생각을 듣느라 정신이 없었던 때들.
아, 그 사람이 어떤지.
이제야 드는 생각이다.
'남편은 혹시 나랑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었을까.'
다른 일로 마음이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대화 직전에 내가 농담처럼 한 말에도 반응이 없었는데,
그때 한 번 물어봤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오늘 남편 눈에 내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을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럴만한 일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지레 찔리는구나... 평소에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그렇다. ‘오늘따라 네가 얼마나 꼴 보기 싫은데 혼자만 재잘재잘 떠드냐…’
남편이 이런 말을 실제로 할 사람은 아니지만,
진심은 이런 것일까 봐.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인정하기 싫어 물어보지 않는다.
사실 내가 꼴 보기 싫다면, 그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일이다.
그러니 섭섭함보다는 왜 그런지 물어볼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가진 힘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오늘의 좌절은, 진정한 대화를 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에 대한 좌절이었다.
대화는 피해자 모드에서 벗어나, 어떤 말이라도 들을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하겠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무시당했는지, 존중받고 있는지, 사랑받고 있는지에만 머물지 않고
상대에게 닿으려는 마음을 가질 때,
그때의 대화가 진짜 대화일 것이다.
아, 그런데 난 아직도 좀 서럽다.
물론 그 서러움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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