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무례함에도 품격으로 응수하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아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말입니다. 내가 먼저 따뜻하게 말해야 상대도 친절하게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조직에서도 이 속담은 보통 상대방의 말투를 경고하거나, 대화 분위기가 안 좋을 상황 등에 통용됩니다. 또한, 회의실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면 어김없이 이런 조언들이 오갑니다.
“말투 좀 조심합시다. 말씀을 가려서 하세요”
“팀 분위기는 결국 리더의 언어에서 시작됩니다.”
내 말이 관계의 씨앗이 되고, 내 언어가 조직의 온도를 결정한다는 가르침.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십이 넘어 사람과 조직을 오래 겪다 보니, 이 익숙한 문장이 조금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내가 아무리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도 늘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이가 있고, 반대로 상대의 무례한 말투 하나에 내 평정심이 단숨에 무너지는 순간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속담을 이렇게 거꾸로 읽어봅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고운 법이다.” 말의 온도는 전염되는 법입니다.
그러니, “상대가 먼저 곱게 말해야, 나도 자연스럽게 곱게 말할 수 있다.” 되지 않을까요?
언어는 생각보다 전염성이 강합니다. 다정함이 흐르는 공간에서는 무뚝뚝한 사람도 말끝이 부드러워지지만, 냉소와 비아냥이 기본값인 조직에 있으면 아무리 인격자라도 어느샌가 말에 날이 서지게 마련입니다. 말의 온도는 오롯이 내 인격에서만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선 관계와 환경 속에서 함께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조직 분위기 조사에서 유독 최하위 점수를 받은 팀이 있었습니다. 성과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회의가 피곤하다”, “소통이 숨 막힌다”라고 토로했죠.
원인을 파악하려 회의에 참관해 보니 이유를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날카로운 칼날들이 허공을 가로질렀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그건 이미 실패했던 방식 아닌가요?”
“전혀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데요.”
누구 하나 틀린 말은 없었지만, 누구도 기분 좋게 들을 수 없는 화법이었습니다. 누군가 입을 떼면 ‘어디서 공격이 들어올까’를 먼저 계산해야 하는 긴장감이 회의실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해당 팀장이 유독 말투가 날카롭던 과장을 불러 면담을 했습니다.
“김 과장, 요즘 말투가 너무 공격적인 것 같지 않아? 팀 분위기를 좀 생각해 주면 좋겠는데.”
그러자 과장이 잠시 망설이다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습니다.
“팀장님…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회의 때 팀장님 말투를 매일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대로 배우게 되더라고요.”
그 한마디는 팀장에게 벼락같은 울림이 되었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한다고 가르치려 했던 자신 역시, 정작 팀원들에게 ‘고운 오는 말’을 준 적이 없었음을 깨달은 것이죠.
그날 이후 팀장은 의식적으로 화법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틀렸어요” 대신 “이 부분은 다른 관점도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고,
“왜 이렇게 했어요?” 대신 “이렇게 생각하신 구체적인 이유가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작은 변화였지만 효과는 매우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차갑던 회의실 공기가 사람 사는 온기로 데워지자, 팀원들도 더 이상 방어 기제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몇 주가 지나자 보고서의 논리뿐만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말의 ‘결’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저는 그때 확신했습니다. 말투는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조직 문화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오십대 인사부장에게 이 속담의 본래 취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내가 먼저 예쁘게 말해야 좋은 관계가 만들진다.” 하지만 조직이라는 생태계에서 오래 살아남으며 배운 또 하나의 진실은, 말의 온도는 결코 나 혼자만의 의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언어, 리더가 선호하는 화법, 그리고 우리 조직이 묵인하거나 장려하는 표현들이 조금씩 우리의 말투를 빚어냅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습니다. 결국 핵심은 ‘어떤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가’입니다. 따뜻한 말이 오가는 조직에서는 평범한 사람의 말도 자연스레 향기를 머금게 됩니다.
말은 개인의 인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직이 함께 만들어 가는 문화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타인의 말을 고치려 들기 전에,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 이 환경이 어떤 언어를 잉태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보게 됩니다.
당신의 조직은 지금 서로에게 어떤 ‘오는 말’을 건네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