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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지만 떠나기는 싫어졌어요

매일을 여행처럼 살아보려구요. 애는 써보려구요.

by 루체

어릴 적부터 여행을 좋아했다. 20대가 되어서는 먼 곳으로 떠날 좋은 기회들이 제법 있었다. 캐나다, 미국, 유럽 등 세계 곳곳을 다녔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여행지는 단연코 미국 서부의 LA였다. 자유로운 분위기, 쾌적한 날씨, 끝없이 펼쳐진 바다, 맛있는 음식, 그리고 양질의 볼거리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여행이었다. 반면 가장 힘들었던 여행지는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이었다. 1개월이라는 여행기간이 주는 육체적인 피로감, 며칠 단위로 나라와 도시를 이동하며 계속해서 어딘가를 다녀야 한다는 부담이 여행 내내 상존하며, 때로는 일종의 압박감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세상을 누볐던 덕분인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서서히 사라지며 어느 새부턴 가는 바다 너머의 세상을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는 공항 가는 길조차 설렌다고 하지만, 여행을 위한 그 일련의 과정들이 그저 성가시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 욕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 무렵 내가 즐기던 여행은 “혼자 떠나는 국내 여행”으로 변화했다. 차를 끌고 이곳저곳을 홀로 누비며, 이틀이든 사흘이든 원하는 기간만큼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대로 자유로움을 즐겼다. 그동안 내가 여행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물리적으로 먼 곳에 있어 쉬이 경험할 수 없는 신비한 것이 아닌 '일상에서 겪지 못하는 새로운 것'이라는, 생각보다 굉장한 것이 아닌 그저 평소와는 다른 소소한 일상의 변화였다는 것을 이 시점에서야 알게 되었다.

더 시간이 흘러 최근에는 그 2~3일짜리의 국내 여행조차 귀찮아졌다. 여행을 떠나는 모든 사소한 과정이 그저 지쳤다. 국내던 해외던 막상 떠나면 금세 “집에 가고 싶다. 한국 음식 먹고 싶다.”라는 그리움이 밀려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지난 8월 휴가철, 직장 동료와 친구들이 각자의 계획에 따라 여름휴가를 떠날 때에도 나는 그 어디로도 떠나지 않았다. 그제야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왜 다른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욕구가 없어진 걸까?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대부분 대동소이할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하니 일탈감을 느끼고 싶어서.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그래서 떠났었다. 허나 요즈음의 나는 일상이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굳이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매일 쳇바퀴 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새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늘 새벽 5시면 헬스장으로 나서며 하루를 시작한다. 밖을 나서면 똑같은 5시임에도 계절과 절기에 따라 세상은 다른 하늘을 보여준다. 새벽 어스름이 가득 내려앉아 있다가도 어느 때면 일출과 함께 헬스장에 도착하기도 한다. 시기마다 변하는 날씨와 온도는 하늘의 색깔뿐만 아니라 흙 내음, 벌레 우는 소리 등 오감의 촉매를 변화시켜 주어 잠도 덜 깬 나로 하여금 다양한 세상을 몸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작동하는 것만 같았던 회사에서는, 몰입과 집중으로 내가 세상에 조금이나마 필요한 존재라는 자기 효용과 유능감을 느낀다. 퇴직하는 날까지 처리해야 할 일의 총량은 끝이 없겠지만, 각각의 일에는 끝이 있다. 그 일들이 누군가를 돕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그 감사함을 전달받기도 한다. 아직 창창한 30대지만(^^), 세상에 '끝'이 명확하다거나 내 뜻대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간다.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노력으로 그 결과를 어느 정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가.


퇴근 후에는 열심히 하루를 보낸 나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로 소소하지만 소중한 보상을 준다. 또 독서, 글쓰기, 필사 등 글과 함께하는 취미를 통해 삶의 깊이감을 경험한다. 시간적 여유가 많은 주말이면,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서점에 가서 책을 골라보기도 하고, 낯선 카페에 앉아 무작정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써보기도 한다.

너무 자주 가면 그 새로움이 옅어지는 것이 두려워 애써 잦은 방문을 아껴두던 청음카페에 인심 쓰듯 가기도 한다.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운 후, 그 공백을 빵빵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새로이 채운다. 빠듯한 출근시간에 쫓기듯 달리던 러닝머신 대신, 태화강변의 러닝트랙을 뛰며 그날, 그 순간의 나를 오롯이 느낀다.


-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바로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

- 응당 사람이라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왕 해야 할 일이라면 이로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몰입하는 것.

- 행복은 불행과 함께, 즐거움은 고통과 함께, 여유는 분주함과 함께, 우리가 만나는 모든 감정과 순간들은

양면성을 갖고 있으며 양쪽 극단에 번갈아가며 닿는 과정들이 바로 삶의 동적인 중심임을 인지하는 것.


여행을 통해 일상으로부터의 변화를, 새로움을 느꼈던 나는 이제 일상 속에서 충분히 그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꾸준한 마음공부를 통해, 일상이 새롭다고 느낄 만큼 마음의 깊이를 갖고 사유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지금 느끼는 깨달음이 꾸준히 건강하게 지속될 것이라고는 감히 기대하지 않는다. 불안정했기에 안정을 느낄 수 있으며, 지루하기에 새로움을 느낀다. 그 모든 순간, 과정들을 기꺼이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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