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모를 닮은, 자식을 닮아가는,

유전, 부모와 자식이 함께 엮어가는 이야기

by 루체

스무 살이 되던 해 1월 1일 자정을 기다리며 민증을 손에 쥐고 술집 앞에 줄을 서던 날, 입대하기 위해 훈련소 연병장에 들어가 줄 서던 날과 같이 살아오며 절대 잊지 못하는 특별한 날들이 있다. 입대날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가장 많이 긴장했던, 떨리는 다리를 멈추기 위해 두 손으로 무릎을 애써 눌렀던 날. 바로 내 인생 첫 면접이자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의 입사 면접날이었다. 그날 받은 질문 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과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각각 이야기해 보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모두 부모님의 성격과 관련된 것이었다. 아버지의 성실함과 어머니의 지혜로움.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보수적인 면과 어머니의 조급함. 일반적으로 “물려받았다”라고 하는 것은 외모와 같은 유전적 형질이나 실물자산 등을 의미할 테지만, 면접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 면접관의 질문 의도에 따라 나의 답변은 신체적, 물리적인 것이 아닌 성격과 기질이었다. 구태여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대부분 유전적 특성을 성격과 기질의 측면까지 포함해서 이해하고 있다.


유전(Genetic)은 신체적, 생리적 특성이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모와 닮은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다. 유전적 물질을 전달하는 DNA는 물론 기질적 특성을 포함하고 있으나, 인간에게 성격이란 기질적 특성 못지않게 외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더욱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타고난 기질보다는 살아온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외형적 특성에 비해 기질적 특성은 유전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부모의 DNA가 자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DNA는 부모의 것 그 자체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수많은 환경, 특히 산모의 삶, 시간 속에서 DNA는 다양한 변이를 일으키며 그들의 세계를 새로이 새겨낸다. 후성유전학에서는 환경적 요인이 DNA의 발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설명하며, 부모의 경험과 환경이 자식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려준다. 환경적 요인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거나 심지어 유전적 변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겪은 경험, 그들의 삶의 방식,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환경들은 결국 자식의 DNA 형성과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우리의 유전적 구성은 단순히 부모의 신체적 특성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삶의 경험과 역사까지 포함한다. 그들이 살아온 시간, 그 지층을 물려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부모가 내려준 DNA는 마치 씨앗처럼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씨앗에 삶이라는 물과 양분을 공급하며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때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도 하고, 썩은 잎이 떨어지기도 하며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간다. 다시 말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질과 성격은 성장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며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특성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의 기질을 만드는 하나의 유전적 형질이라면, 그 과정에서 우리가 부모님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특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면, 더 이상 유전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다. 부모님의 유전자와 성격이 나에게 전달되었듯, 나의 세계 또한 부모와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저 자식만이 부모님을 통해 삶의 가르침을 배워나갈 뿐만 아니라, 부모님 또한 나를 키우며 또 어느새 커버린 나를 보며 배우고 변화한다. 이런 상호작용은 유전이라는 개념을 더욱 다채롭고 복합적으로 만든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 부모님은 나에게 온 세상이자 하늘이었으나,

10대의 나에게 부모님은 친구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우정 다음의 우선순위였다.

20대의 나에게 부모님은 세상의 변화와 나의 어른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답답한 사람들이었으나,

30대의 나에게 부모님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자, 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오늘의 나는, 면접관이 되어 도리어 부모님께 거꾸로 질문한다. 나를 키우며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 가장 슬펐는지, 가장 즐거웠는지, 가장 힘들었는지. 이를 통해, 나에겐 그저 즐거웠던 쾌락의 순간이 당신에게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을, 유전이란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가장 솔직하게 내 안을 들여다보고, 가장 다정하게 내 옆을 챙기며 "우리의 DNA를 만들겠다."라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변덕스러운 계절, 멈춰 선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