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 : 덤블도어 할아버지

채움을 위한 비움, 비움으로 남는 채움

by 루체

러닝을 할 때면 온갖 잡념들이 떠오른다.

오늘 새벽 마주한 잡념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것이었다.

시간은 과정, 공간은 결과.

문득 그리 느껴졌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의 경험, 모든 과정들은 되돌릴 수 없다.


반면 공간은 부분적으로 되돌릴 수 있다.

모든 환경이나 조건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겠지만,

바닥에 떨어진 펜을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듯

상태의 일부에는 개입할 수 있다.


생각은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질문으로 이어진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과정과 결과를 구분하고

규칙과 관계를 정의하려 할까?


일정한 패턴이나 상관관계를 찾으려는 욕구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본능이 유난히 강하게 올라오는 순간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혹시,

애써 감춰두고 있는 무언가로부터의 '불안'은 아닐까.



요즘은 매달 적어도 10권 이상의 책을 읽는 편이다.

예전엔 절반 이상이 에세이로 편중됐었던 반면,

최근에는 인문교양이나 전문서적까지

그 장르와 범위가 다양해졌다.


독서의 목적과 즐거움이 풍부해진 탓이겠지.


에세이를 볼 때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나만 가졌던 망상이 아니구나. “

하는 교감과 위안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유명인의 이름이 붙은 책보다는

이름 모를 사람 누군가들의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글을 쓰기까지 겪어냈을 시간과

문장 사이사이에 스며 있는 수많은 사유를

차곡차곡 또 담담하게 엮어내는 그 담음새가 좋았다.


과연 내가 쓰는 글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를 느끼게끔 도울 수 있을까.

작은 조각의 위안이라도,

조금의 온기라도 전달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도 쓴다.

불안 또한 내 일부임을 당연시 받아들이며,

이 글이 세상에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과거의 나에게 닿기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고개만 돌리면 AI, AI 하는 요즘

지금의 세상과 묘하게 대비된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변해가지만,

나는 도리어 세상을 조금 더 느리게 또 섬세하게

무엇보다 다정하게 바라보고 싶어진다.


관찰한 것을 풍부하게 느끼고

입체적으로 생각해 보고

이리저리 끄적여보는 일.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조금 더 인간다워지는 것만 같다.


비록 지식은 부족할지라도,

지혜로 가득 찬 덤블도어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인간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주는 시대에서

도리어 스스로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것들로 가득 채우기보다,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비울 줄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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