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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 숨 불어넣기

글을 못 써도 괜찮아: 일생 단 한 번의 자서전 쓰기【제2강_#2】

by Lazist

지난 시간 과제를 해보셨나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단어 몇 개만으로 AI파트너가 문장을 만들어주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느낌도 받으셨을 거예요.


"쉽게 문장이 만들어지네? 그런데 뭔가 밋밋한데?"


맞습니다. 우리가 지난 강의에서 만든 문장은 '뼈대'입니다. 사건의 윤곽은 알 수 있게 됐지만 아직 살과 피가 완전히 붙지 않은 상태죠. 독자가 장면을 머리 속에 그려낼 수는 있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그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함께 연구해보겠습니다.


그날 출근을 서두르다가 모든 것이 틀어졌다. 아침마다 습관처럼 들리는 커피숍에서 사달이 벌어졌다. 점원으로부터 테이크아웃 컵을 받아드는 순간 나는 뭐에라도 홀린 듯이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 마침 오후에는 매우 중요한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커피로 얼룩진 셔츠를 입고 고객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스럽고, 곤란하게 만들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마지막 문장입니다. 우리는 이 문장에 조금 더 글감을 보태 생동감을 부여할 겁니다. 그러자면 조금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겠죠? 필요한 만큼 풍부한 느낌의 문장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바로 ‘6하원칙’이죠.



기자들의 필살기, 6하원칙


6하원칙은 언론인들이 기사를 쓸 때 반드시 지키는 원칙입니다.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라는 여섯 가지 요소가 모두 담겨야 완전한 정보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자들은 이 원칙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깁니다.

자서전은 기본적으로 신문기사나 소설과 같이 서사(敍事)를 담은 글입니다. 6하원칙이 충실히 담긴 자서전 문장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독자의 머리 속에 선명한 그림을 만들어줍니다.


6하원칙의 각 요소가 주는 효과를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누가(Who): 사람의 구체적 묘사가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예를 들어 ‘점원’보다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신입 점원’, ‘긴장한 듯 손이 떨렸다’라는 묘사를 부여하면 생동감이 더 살아납니다.

언제(When): 정확한 시간이 사건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어줍니다. ‘어느날 아침’보다는 ‘두세 해 전의 어느날’ 혹은 ‘2023년 6월의 목요일 아침 8시 40분’이 훨씬 생생하죠.

어디서(Where): 공간의 디테일이 장면을 살립니다. 그냥 ‘커피숍’보다는 ‘회사 건물 1층의 스타벅스’나 ‘엘리베이터 앞의 사내 커피숍’이 훨씬 더 구체적입니다.

무엇을(What): 사건의 핵심을 보강합니다. 이것도 그냥 ‘커피’보다는 ‘핫아메리카노 톨 사이즈’가 어떨까요? 어떻게(How): 과정과 방법이 생동감을 줍니다. ‘커피를 쏟았다’보다 ‘컵을 받아드는 순간 뚜껑이 열리며 뜨거운 커피가 흰 셔츠 가슴팍으로 쏟아졌다"는 묘사가 생생합니다.

왜(Why): 동기와 감정이 공감을 만듭니다. ’당황스러웠다‘보다 "9시 회의까지 20분밖에 남지 않아 조급했고, 오후에 미팅도 걱정이 됐다’가 더 많은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6하원칙에 따라 스스로 질문을 계속해 보면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봅시다. 그리고 하나하나 빈칸을 채워 넣습니다. 기억하시죠? 완전한 문장이 아니어도 됩니다. 단어를 나열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언제: 2023년 6월 어느 목요일 아침 8시 40분쯤. 장마철이라 습했음

어디서: 회사 건물 1층 스타벅스

누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점원. 신입인 듯

무엇을: 핫아메리카노 톨사이즈, 흰 셔츠 가슴팍에 쏟아짐

어떻게: 점원이 컵을 건네는데 손이 미끄러졌음.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혀있었던 듯

왜: 9시 임원회의 20분 전. 오후에는 고객과의 미팅이 예정돼 있었음.


이 메모를 그대로 프롬프트에 반영하고 문장을 받아보겠습니다.

[예제 프롬프트: 6하원칙으로 문장 보강]

그날 출근을 서두르다가 모든 것이 틀어졌다. 아침마다 습관처럼 들리는 커피숍에서 사달이 벌어졌다. 점원으로부터 테이크아웃 컵을 받아드는 순간 나는 뭐에라도 홀린 듯이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 마침 오후에는 매우 중요한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커피로 얼룩진 셔츠를 입고 고객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스럽고,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 문장을 6하원칙에 의거한 추가정보와 요청사항을 반영해 보강해줘.

추가정보
언제: 2023년 6월 어느 목요일 아침 8시 40분쯤. 장마철이라 습했음
어디서: 회사 건물 1층 스타벅스 누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점원. 신입인 듯
무엇을: 핫아메리카노 톨사이즈, 흰 셔츠 가슴팍에 쏟아짐
어떻게: 점원이 컵을 건네는데 손이 미끄러졌음.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혀있었던 듯
왜: 9시 임원회의 20분 전. 오후에는 고객과의 미팅이 예정돼 있었음.

요청사항
1. 모든 구체적 정보를 자연스럽게 녹여낼 것
2. 문장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적절히 나눌 것
3. 60대 초반 남성의 회고담 톤 유지, 자서전에 쓸 수 있는 문어체로
4. 과장하지 말고 담담하게 5. 독자가 장면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2023년 6월의 어느 목요일 아침이었다. 장마철 특유의 끈적한 습기가 온몸을 감싸던 날, 그날따라 유독 출근길이 더뎠다. 9시 정각에 시작될 임원회의를 앞두고, 나는 늘 그랬듯 회사 건물 1층에 자리한 스타벅스로 향했다. 시각은 8시 40분을 막 넘기고 있었다.
갓 스물을 넘겼을까, 앳돼 보이는 신입 점원이 주문한 핫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톨 사이즈의 종이컵을 받아들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점원의 손이 작게 미끄러지며, 기우뚱한 컵에서 뜨거운 커피가 왈칵 쏟아져 내렸다. 아마 뚜껑이 야무지게 닫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흰 셔츠 가슴 한복판은 짙은 갈색 얼룩과 함께 뜨거운 김을 피어 올리고 있었다.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시계를 보았다. 회의는 고작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오후에 있을 중요한 고객과의 미팅이었다.
출근을 서두르다 벌어진 사소한 실수가 그날의 모든 것을 틀어지게 만든 순간이었다. 커피로 축축한 셔츠를 입고 고객을 만나야 한다는 곤란한 상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앞 문장과 명백한 차이를 느끼셨을 겁니다. 원고량도 꽤 늘어났죠. 같은 사건인데도 후자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당신이 느꼈던 그날 아침의 습한 공기, 조급한 마음, 쏟아지는 커피의 온도를 독자가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로써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한 공감을 독자와 함께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소설이든, 영화든, 자서전이든 모든 이야기는 '사실 그대로'가 아니고 어떤 의도에 의해 '편집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영화감독이 수백 시간 분량의 촬영본에서 두 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어내듯, 우리도 자서전을 쓸 때 인생의 수많은 순간들 중에서 의미 있는 장면만을 골라 효과적으로 배치해야 합니다.


문장에 6하원칙 정보를 넣으라는 말은 '기억나지 않는 사실까지 억지로' 채워 넣으라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수년 전 그 날 아침이 정확히 몇 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출근시간 바로 전’이라고 쓰고, 점원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려보이는 점원’이라고 쓰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에 기억 속에 존재하는 진실입니다.

자서전은 법정 증언이 아닙니다. 당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니 기억이 희미한 부분은 당신이 느낀 감정과 분위기에 맞춰 합리적으로 채워넣으세요. 물론 공란으로 비워두셔도 됩니다. 그것이 바로 ‘편집’이자 ‘선택과 집중’입니다.


자서전에서 중요한 장면, 전환점이 된 사건, 감정이 격렬했던 순간에만 6하원칙을 충실하게 적용하세요. 모든 문장을 이렇게 쓰면 오히려 산만해지고 서사가 길을 잃습니다.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연결 문장, 배경 설명, 일상적인 루틴(반복)은 필요한 만큼만 서술하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불필요한 정보는 오히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됩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계를 나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단 한 번의 프롬프트로 절차를 단축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 통합 프롬프트를 활용하세요.


[예제 프롬프트: 6하원칙 통합 프롬프트]

내가 제공하는 키워드를 자서전 문장으로 만들되, 6하원칙을 적용해 구체적으로 써줘.

키워드:

추가정보(6하원칙):
1. 언제: [구체적 시간, 계절, 날씨 등]
2. 어디서: [장소, 주변 환경]
3. 누가: [관련 인물]
4. 무엇을: [사건의 세부사항]
5. 어떻게: [구체적 행동과 과정]
6. 왜: [이유, 당시 감정]

요청사항
1. 화자를 '나'로 하여(1인칭) 자서전 회고담 느낌으로 작성해줘
2. 화자는 [나이/성별/당시 상황] 설정
3. 문장은 구어체를 지양하고 문어체에 가깝게
4. 과장하지 않고, 당시 느꼈던 감정을 있는 그대로
5. 독자가 장면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6. 문장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으로



그리고, 당신 인생의 어느날


이쯤에서 앞선 강의에서 연습했던 타임라인과 기억 트리거를 소환해보겠습니다.

타임라인에서 한 행을 고르고, A열부터 E열까지 모든 정보를 담아 문장을 요청합니다.


[예제 프롬프트: 실제 사건 - IMF와 구조조정]

내가 제공하는 키워드를 자서전 문장으로 만들되, 6하원칙을 적용해 구체적으로 써줘.

키워드: 1997년, IMF 외환위기, 회사 구조조정, 가족 부양, 두려움, 희망

추가정보(6하원칙)
1. 언제: 1997년 11월 어느 금요일 저녁, 퇴근 무렵
2. 어디서: 회사 대회의실, 전 직원 긴급 소집
3. 누가: 사장, 임원진, 전 직원 200여 명
4. 무엇을: 구조조정 발표, 30% 인원 감축 예고
5. 어떻게: 사장이 단상에 올라 발표, 회의실 안 정적, 귀가 후 아내와 대화
6. 왜: IMF 외환위기로 회사 경영 악화, 두 아이 아버지로서 불안, 하지만 가족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요청사항
1. 화자를 '나'로 하여(1인칭) 자서전 회고담 느낌으로 작성해줘
2. 화자는 [나이/성별/당시 상황] 설정
3. 문장은 구어체를 지양하고 문어체에 가깝게
4. 과장하지 않고, 당시 느꼈던 감정을 있는 그대로
5. 독자가 장면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6. 문장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으로2. 화자는 [나이/성별/당시 상황] 설정
1997년 11월, 그해 겨울은 유난히 일찍 찾아왔다. 금요일 퇴근 무렵의 사무실에는 으레 떠돌던 주말의 들뜬 공기 대신, 서늘하고 불길한 예감만이 감돌았다. 오후 5시가 막 지났을까, 사내 방송으로 전 직원을 대회의실로 소집한다는 긴급 공지가 내려왔다.
200여 명의 직원들이 모인 대회의실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얼마 후, 굳은 표정의 사장님과 임원진이 단상 위로 올랐다. 사장님은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IMF 외환위기로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우며,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에 들어간다고. 이어 전 직원의 30퍼센트를 감축해야 한다는 말이 칼날처럼 날아와 박혔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제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셋 중 하나.’ 그 차가운 숫자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누군가는 내일 당장 자신의 책상을 비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도 있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아내를 마주하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렵게 회의실의 이야기를 꺼내자,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내 손을 꾹 잡아주었다.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잠든 두 아이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불안감에 심장이 죄어왔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올랐다.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가족을 지켜내야 한다는 선명한 책임감이었다. 1997년의 그 겨울은 나에게 그런 계절로 기억된다.


1강을 진행하면서 ‘타임라인 작성에 충분히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고 했던 제 조언을 기억하시나요?

가이드를 잘 따라오셨다면, 여러분의 타임라인은 6하원칙의 모든 재료를 충실히 담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 줄의 타임라인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의 과제를 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타임라인을 펼칠 시간입니다.


각자의 타임라인에서 키워드를 추출해 AI파트너에게 필요한 정보가 충분히 담긴 좀 더 긴 문장(단락)을 요청하세요.


글쓰기는 결국 정보의 축적입니다. 서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 정보를 효율적으로 잘 배치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단어에서 문장으로, 문장에서 단락으로 가는 과정을 마스터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단락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 짓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다음 강의에서 뵙겠습니다.






1. 이 강의는 주 2회(매주 월/목요일)을 기본으로 진행합니다. 1강당 약 3회 분량입니다.

2. 댓글로 질문 받습니다. 짧게 즉답이 가능한 답변은 댓글로 드리고, 중요한 내용은 모아서 마지막 강의에서 QnA로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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