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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조(塑造)를 하지말고 조각(彫刻)을 하라

글을 못 써도 괜찮아: 일생 단 한 번의 자서전 쓰기【별강1_#2】

by Lazist

이 글은 마음은 굴뚝 같으면서도 여전히 '자서전 쓰기'를 망설이고 있는 분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한 별강 형태의 글입니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써뒀던 글이라 앞선 글들과 다소 중복된 내용이 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콩은 누구나 불릴 수 있다


자서전(自敍傳)을 영어로 'autobiography'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보나 영어로 보나 뜻이 같습니다. 스스로 쓰는 전기(傳記)라는 뜻이죠. 엄밀히 말해 남이 써주는 전기는 자서전이 아닙니다. 전기를 뜻하는 영단어로 'biography'가 있지만, 그냥 'history'라고 하기도 합니다. 굳이 어원을 따지지 않더라도 'his'와 'story'가 합쳐진 단어임을 유추해낼 수 있죠.


타자인 '그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써주는 것이므로 전기(history)는 자서전이 아닙니다. 저는 '자서전 집필을 누군가에게 의뢰한다'는 말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원고를 의뢰하는 순간, 자서전의 본질이 사라져버린다는 거죠.


그러나 전문작가에게 원고를 의뢰한다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서전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굳이 지적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기왕에 자서전을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우선적으로 본인이 직접 쓰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혹시 '자서전이란 것은 재력과 여유가 있는 누군가가 작가나 출판사의 도움을 얻어 내는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면 그것부터 버려야 합니다


자서전은 직접 써야 한다는 것. 이것은 사실 불가피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를 통해 글로 표현하려면 어떻게든 그 이야기를 잘 전달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손쉽게 취하는 방법이 인터뷰(구술)죠. 그런데 이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입니다. 말이란 것은 한 번 뱉으면 사라져버리는 휘발성을 갖고 있습니다. 녹취를 통해 보존할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말을 듣는 행위'는 '글을 읽는 행위'보다 시간적으로 훨씬 비효율적입니다. 누군가에게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말보다 글이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최종적으로 얻고자 하는 산출물은 자서전이라는 책, 즉 '글뭉치'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글을 만들기 위해서 말을 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것을 다시 글로 쓰도록 한다. 이 과정 자체가 지독하게도 비효율적입니다.


두번째 방법은 어떻게든 문서로 이야기를 정리해 작가에게 전달해주는 겁니다. 구술보다는 훨씬 효율이 좋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자서전을 의뢰받았을 때, 저는 주로 이 방법을 추천합니다. 그것이 뭐가 됐든, 말이 되든 안 되든, 아무리 길이가 짧을지라도 일단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서 달라고 주문합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자서전을 쓴다, 라는 행위의 본연을 경험하길 바라는 것이 첫번째 이유고, 전달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의 여지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게 두 번째 이유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그 자체로 생각을 '불리는' 과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글은 곧 '생각'이라고 말씀드린 적 있죠? 장(醬)을 만들려면 콩을 불린 후에 삶아서,식히고, 발효를 시켜야 합니다. 날콩으로는 장을 만들 수 없죠. 글도 마찬가집니다. 재료(글감)를 충분히 불린 후에야 글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 과정을 막연하다거나,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 한 줄이라도 구체적인 뭔가를 쓴다는 실제적인 행위,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물에 담긴 콩이 부는 것처럼 생각도 저절로 붑니다. 누구나 장을 만들 수는 없지만, 콩은 불릴 수 있죠.


여기까지 왔는데 여전히 감이 안 온다고요? 딱 한 줄인데도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게 당연합니다. 제가 아직 그 부분까지 설명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여기서는 단 한 가지 사실만 분명히 기억해두셨음 좋겠습니다.

자서전은 스스로 쓰는 겁니다.

직접 글을 쓰는 행위를 완전히 생략한 채로 자서전을 만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소조(塑造)를 하지말고 조각(彫刻)을 하라


'작가'는 보통 '글을 쓰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지만 '글'로만 한정해도 그 범위가 엄청나게 넓습니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작가도 있고.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도 있습니다. 방송용 대본을 쓰는 사람도 작가라고 하고, 광고를 기획하고 문안을 쓰는 카피라이터도 작가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누군가로부터 의뢰를 받아 자서전 비슷한 것을 써주는 이른바 '대필작가(ghost writer)'도 있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화가'라고 하고, 조각을 하는 사람을 '조각가', 글씨를 쓰는 사람을 '서예가' 혹은 '캘리그래퍼'라고 하는데 유독 글을 쓰는 작가는 그런 식으로 구분해 부르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회화작가, 글씨를 쓰는 서예가를 서예작가라고 부를 때가 있죠.


어쨌거나 모든 작가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해 작업을 합니다. '소조'와 '조각'이죠. 소조는 '빚어만드는' 것이고, 조각은 '깎아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면 소조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서전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각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이미 '인생'이라는 완벽한 재료를 들고 있고, 자서전을 쓰기 위해 단지 이것을 깎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자서전 앞에서 크리에이터(Creator)가 되려하지 마세요. 당신 인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줄 디렉터(Director)가 되십시오. 당신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500년 전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는 걸작 '피에타(Pietà)'를 조각했습니다. 그는 볼품없이 크기만 한 대리석 덩어리를 발견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겠다. 단지 돌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어떤 것을 드러내기만 할 생각이다."


그렇게 그는 인간의 죄를 사하고 숨을 거둔 예수와, 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 마리아의 숭고한 슬픔을 돌 안에서 끄집어냈습니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당신의 인생'이라는 돌덩이가 놓여 있습니다. 그 속에는 이미 당신만의 이야기, 당신이 걸어온 길, 당신이 사랑한 사람, 당신이 흘린 눈물과 웃음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여기에서 당신은 무엇을 끄집어내고 싶으신가요? 어떤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으신가요?

그게 무엇이든 당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정과 망치를 집어들고 기꺼운 마음으로 돌 앞에 앉는 것뿐입니다.

조금만 용기를 내세요. 당신의 인생도 누군가가 귀 기울여 들어줄 만큼 충분한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1. 이 강의는 주 2회(매주 월/목요일)을 기본으로 진행합니다. 1강당 약 3회 분량입니다.

2. 이 글은 별강이며 2강은 10월 6일(월)에 시작합니다.

3. 댓글로 질문 받습니다. 짧게 즉답이 가능한 답변은 댓글로 드리고, 중요한 내용은 모아서 마지막 강의에서 QnA로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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