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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의 역설, 특별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글을 못 써도 괜찮아: 일생 단 한 번의 자서전 쓰기【별강1_#1】

by Lazist

이 글은 마음은 굴뚝 같으면서도 여전히 '자서전 쓰기'를 망설이고 있는 분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한 별강 형태의 글입니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써뒀던 글이라 앞선 글들과 다소 중복된 내용이 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스스로 질문해보기 '과연 할 이야기가 있어?'


"너 자서전도 써주니? 내 것도 써줄 수 있어?"


동창회 자리라든지 오랫만에 만나 제게 근황을 묻는 친구들의 질문은 대개 이 말로 끝나곤 합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친구들이 자서전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전 우리나라에서는 꽤 드문 축에 속하는 '사사(社史) 작가'라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업계 추산 100여 명이 채 안 될 것으로 여겨지는 '희귀한' 직업이죠. 기업이나 관공서의 의뢰를 받아 그들의 역사서를 씁니다. 단체명 뒤에 ' XX年史' 하는 식의 제목이 붙는 두껍고 무거운 책들입니다.


가끔은 자서전도 씁니다. 그 대상이 기업이나 관공서 등의 '단체'인가, '개인'인가가 다를 뿐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사사와 자서전은 통하는 데가 많습니다. 자서전 또한 사사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로부터 의뢰를 받습니다.(저는 이 말이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나중에 설명 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보통은 기업이나 공직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죠 뭔가 의미 부여가 가능할 정도로 요란한(?) 인생을 살았거나,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적, 직업적으로 '자서전'이 필요해지는 경우가 있고, 그럴 때 그들은 저 같은 사람에게 의뢰를 합니다.


이건 비밀인데요. 그런 사람들의 책을 대신 써주는 일은 비슷한 일에 이력이 난 저 같은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어렵고 피곤한 일입니다.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자료와 구술을 받아 남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처럼' 쓰는 일이 쉬울 리가 없죠. 그래서 친구들의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보통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 돈 많은가보다? 자서전 원고료는 비싸. 원고료와 제작비를 대주겠다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자비로 할 생각이라면 그 돈으로 어디 가족들과 여행이라도 다녀와. 그게 더 남는 일이야."


글 쓰는 일에는 나름의 전문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며, 품이 많이 든다. 직업작가의 도움을 받으려면 그만큼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설명을 해주면 대부분은 질문을 멈춥니다. 그럴 때 저는 한 번 더 묻곤 하죠.


"직접 써볼 생각은 없는 거야?"


친구들은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직접 자서전을 쓸 정도의 글솜씨는 없다며 손사래를 치죠.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솜씨가 없는 게 아니라, 할 이야기가 없는 거겠지.

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글은 '솜씨'로 쓰는 게 아닙니다. '생각'으로 쓰는 거죠. '글감'이 없다면 글을 쓸 수 없고, 생각이 곧 글감입니다.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든 어느날 문득 내 인생에도 자서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우선 누군가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는지, 그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부터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평범함의 역설, 특별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글로 옮길 만한 내 인생의 무언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자서전 쓰기를 포기합니다. 업계의 비밀 한 가지를 더 알려드릴게요.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유명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별로 특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들이 전문작가를 고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평범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분칠'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같은 큰일을 겪은 이전 세대에는 자수성가 스토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경제발전의 수혜를 입은 현재의 주류세대로 넘어오면 '눈물 없이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는 퍽 드물어집니다. 고생은 부모님 세대까지의 몫이었고, 나는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 나오고, 직장이나 대학에 들어가서 직업을 갖고 현재에 이르렀다, 정도로 요약되는 인생이 절반은 넘을 겁니다.


이 대목에서 '결코 내 삶은 그렇지 않았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부터 그 굴곡진 이야기를 정리하기 시작하면 됩니다. 그런데 '바로 내가 그래. 평범하기 짝이 없었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많을 거예요. 이 분들은 자서전을 쓸 이유가 없는 걸까요? 이유나 필요를 떠나 '글감'부터 없는 거니까 자서전을 쓰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닐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그런 인생은 없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누군가에게 특별합니다. 적어도 당신 스스로에게는 그럴 거예요. 만약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단지 자서전의 '글감'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겁니다. 사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자서전을 쓰기 위한 글감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가이딩이 필요하고, 저는 그 방법을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누가 쓰더라도 책이 될 만한 특별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서전을 쓸 필요가 없는 부류는 전자, 즉 '특별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그냥 놓아두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쥐어짜내 이야기로 만들어냅니다. 전기(傳記)가 되고, 평전(評傳)이 되죠. 드라마나 영화가 되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자서전(自敍傳)은 내가 쓰는 나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무언가 필요에 의해서, 단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혹은 남이 써줄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내가 직접 쓰는 인생 이야기' 그게 바로 자서전입니다. 오히려 당신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산 평범한 사람이니까 자서전을 쓰는 겁니다. 그리고 자서전을 쓰면서 알게 되기도 하죠. 결코 나의 인생은 평범하지도, 순탄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가치가 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평범함의 역설'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극단적으로 평범한 남자를 한 번 상상해보세요.


그의 나이는 인구피라미드 중간점에 위치해 있으며, 동년배 평균 키와 몸무게를 지녔습니다. 북방계와 남방계가 적당히 섞인 지극히 평범한 한국 사람의 외모를 갖고 있죠. 시력은 평균에 가까워서 안경을 쓸 때도 있고, 안 쓸 때도 있습니다. 그의 소득은 대한민국 중위 소득에 정확히 수렴합니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80점에서 90점 사이가 나옵니다.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한 달에 두어 번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십니다. 고혈압약과 당뇨병약, 탈모약 중 한 가지를 먹습니다. 도무지 튀는 부분이 없습니다. 너무나 평범합니다.


예전에는 일간지 등 매체에서 일부러 이런 사람들을 찾아 '평균 한국인'으로 선정하기도 했죠. 1991년 <시사저널>은 38세의 심영호 씨를 평균 한국인으로 선정했습니다.



noname01.png 1991. 12 <시사저널>


심영호 씨를 직접 만나볼 기회는 없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이렇게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대답이 '예'든 '아니오'든 그것과 상관없이 그는 이미 평범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시중의 유력한 매체에 의해 '평균 한국인'으로 선정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죠. 그 정도의 평범함은 이미 한계를 넘어서버린 남다름인 겁니다. 평범함으로 특별함을 지니게 된 것이죠. 저는 "당신이 지닌 그 특별한 평범함을 주요 내용으로 해서 자서전을 써보지 않겠습니까?"하고 심영호 씨에게 권하겠습니다.


그 내용이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자서전을 써야겠다는 마음 먹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인생은 이미 특별해지기 시작한 겁니다. 꼭 누군가 그것을 읽지 않더라도 당신에 대한 무언가를 직접 글로 쓰기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충분한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내깟게 무슨 자서전! 이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세요.

단지 미뤄뒀던 어제의 일기를 오늘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일기를 쓰는 데는 어떠한 소양도, 자격도 필요없습니다.

쓸 이야기가 없어서 걱정이라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자서전 한 권을 완성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 그거 하나만이 중요한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당신의 인생은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아무리 겸손하게 봐도 자서전 한 권 정도는 남길 정도의 가치는 있어요.

사실은, 당신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렇습니다.





1. 이 강의는 주 2회(매주 월/목요일)을 기본으로 진행합니다. 1강당 약 3회 분량입니다.

2. 이 글은 별강이며 2강은 10월 6일(월)에 시작합니다.

3. 댓글로 질문 받습니다. 짧게 즉답이 가능한 답변은 댓글로 드리고, 중요한 내용은 모아서 마지막 강의에서 QnA로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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