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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것처럼 글쓰기’ 체감하기

글을 못 써도 괜찮아: 일생 단 한 번의 자서전 쓰기【제2강_#1】

by Lazist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합니다. 잘 써야 한다는 압박, 문장이 어색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문법이 틀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첫 문장부터 손을 붙들어 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글은 결코 거창한 기술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웃고, 떠듭니다. 소리를 내어 말을 할 줄 압니다. 말은 글의 다른 얼굴일 뿐입니다.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글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말할 때는 자연스럽다가도, 글을 쓰려고 하면 손이 멈출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말과 글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言語)라는 단어는 ‘말’과 ‘글’을 모두 의미합니다. 하지만 말과 글은 분명히 다릅니다. 말은 소리로 전달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수단을 함께 동원합니다. 억양, 표정, 제스처, 심지어 목소리의 크기까지 모두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그래?"라는 짧은 말 하나도 억양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높은 톤으로 올려 말하면 놀라움이나 의문이 되고, 낮은 톤으로 내려 말하면 의심이나 불신이 됩니다. 같은 말인데도 목소리 하나로 정반대의 뉘앙스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하지만 글은 다릅니다. 오직 문자만 갖고 의미를 전달해야 합니다. 억양도, 표정도, 제스처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더 신중하게 써야 합니다.


이 차이가 바로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게다가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글쓰기에는 '정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하나씩 끄집어내 순서를 정하고, 불필요한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채워넣어야 합니다. 말은 곧잘 즉흥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글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구성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글쓰기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는 명사를 나열합니다. '엄마'와 '밥', 단 두 단어만으로 완벽하게 본인의 의사를 엄마에게 전달합니다. 엄마는 어렵지 않게 아이가 배고프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러나 아이는 조금 더 자라 문장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엄마 밥 줘."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가 결합되면서 의미가 훨씬 명확해집니다. 아이는 이렇게 말을 배우면서 조금씩 어른이 돼갑니다.


"어머니, 밥(을) 좀 주세요. 아침을 걸렀더니 배가 고프네요. 오늘 점심엔 잔치국수를 먹고 싶어요. 언젠가 애호박을 듬뿍 썰어 넣고 끓여주신 국수가 자꾸 생각나요.”


언젠가부터는 밥을 달라는 단순한 요구가 맥락을 가진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배경 설명이 들어가고, 감정이 담기고, 구체적인 바람이 표현됩니다. 우리는 자서전을 쓰기 위해 필요한 말(혹은 글)을 적어도 이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빈 답안지에서 느낀 글쓰기의 벽


저는 홍보실에서 근무할 때 매년 승진시험장을 취재했습니다. 힘들게 답안지를 채워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고, 사진에 담기도 했습니다. 시험장에 나갈 때마다 놀랐던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논술형 문제에 답안을 전혀 작성하지 않고 백지를 제출하는 사람이 꽤나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빈 답안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엔지니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실무에서 검증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문제의 답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승진이 걸린 중요한 시험에서 답을 써내지 못했을까요? 저는 문장으로 완성해야 하는 답안 즉, ‘글쓰기’에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들에게 글이 아닌 말로 답을 내라고 했다면, 그들은 뭔가를 술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공정이 개발된 배경은 이렇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발전했습니다. 앞으로는 어떠 어떠한 점에 대한 개선이 필요합니다"라고 완벽하게 말하겠죠. 하지만 그것을 글로 적으라고 요청받는 순간 사고가 정지됩니다.


사실 논술시험은 완벽한 답안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아는 만큼만 적으면 부분 점수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줄도 쓰지 않으면 모든 점수가 사라집니다. 수험생들이 남겨놓은 빈 답안지를 볼 때마다 저는 늘 생각했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벽은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강박이구나. 이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이 사람들은 영원히 답안지를 채울 수 없다.’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 장벽은 생각만큼 높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훨씬 더 낮아졌습니다.

왜 그런지, 어떻게 넘을 수 있는지 지금부터 찬찬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아이처럼 말하고 AI파트너로부터 문장 얻기


“오늘도 일찍 출근했네? 출장 다녀오느라 며칠 못 봤는데, 어때? 잘 지내? 별일 없었지?”


사실 당신은 오늘 아침에 ‘별일’을 겪었습니다. 여러분의 직장동료가 인사를 건낼 때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커피를 사서 들고 오다가 쏟아버렸어. 셔츠에 다 튀고 난리가 아니야. 오후에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어.”


제가 정리한 이 대화를 보고 여러분은 이렇게 외치며 짜증을 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글로 옮기는 거부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네. 압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는 AI파트너에게 도움을 청할 겁니다.

위의 사건을 아이의 말하기로 다시 구성해봅시다. 핵심단어를 나열해보는 겁니다.


아침, 출근길, 커피, 쏟다, 셔츠, 젖음. 오후 중요한 미팅, 당황, 곤란...


이 단어를 긁어모아 AI파트너에게 문장을 요청합니다.


[예제 프롬프트: 문장 요청하기]

내가 떠올린 오늘의 기억을 문장으로 확장해줘.

아침, 출근길, 커피, 쏟았다, 셔츠, 젖음. 오후 중요한 미팅, 당황, 곤란

요청사항
1. 이 단편적인 기억을 3~5문장 정도의 자연스러운 글로 만들어줘
2. 화자를 나로 해서(1인칭) 쓴 일기처럼
3. 나의 목소리와 감정이 느껴지도록 써줘
4. 과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살려줘


그러면 AI파트너가 다음과 같이 문장을 완성해줍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은 정말 잊고 싶어. 급하게 테이크아웃 잔에 든 커피를 들고 뛰어가다 그만 손에서 놓쳐버렸지. 따뜻한 커피가 셔츠 위로 그대로 쏟아져 젖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어. 하필 오후에는 정말 중요한 미팅이 있었는데, 얼룩진 셔츠를 보면서 얼마나 당황스럽고 곤란했는지 몰라. 미팅 내내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여 죽는 줄 알았다. 내일은 좀 더 평온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단편적인 단어를 나열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맥락과 감정이 담긴 문장이 완성됐습니다.



내 목소리로 톤 바꾸기


하지만 이 문장은 여전히 불만족스럽습니다. 어딘가 나의 목소리 같지는 않은 느낌이죠. 어떤 사람에게는 문장이 너무 길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AI파트너에게 수정을 요청합니다.


[예제 프롬프트: 문장 수정하기①]

1. 좀 더 간결한 문장으로
2. 나는 60대 초반의 남자야. 나이와 상황에 맞춰 어색하지 않은 말투로 써줘
오늘 아침, 출근길부터 영 일이 꼬였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그만 셔츠에 시원하게 쏟아 젖어버렸지. 오후에 중요한 미팅이 잡혀 있었는데, 젖은 셔츠 차림으로 참석하려니 여간 당황스럽고 곤란한 게 아니더군.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미팅 내내 하루가 꽤 길게 느껴졌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요? 다시 한 번 문장을 수정해 보겠습니다.


[예제 프롬프트: 문장 수정하기②]

1. 너무 구어체
2. 자서전에 어울리는 회고담 느낌으로 문장 완성해줘


이처럼 AI파트너에게 여러 번 작업을 반복하도록 해서 근사치의 문장을 만들어내면 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을 계속하다 보면 ‘일괄작업’도 가능해집니다. 이런 방법으로 누구든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맞춰 ‘나의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예제 프롬프트: 나의 목소리로 글쓰기(통합 프롬프트)]

내가 떠올린 오늘의 기억을 문장으로 확장해줘.

아침, 출근길, 커피, 쏟았다, 셔츠, 젖음. 오후 중요한 미팅, 당황, 곤란

요청사항
1. 이 단편적인 기억을 3-5문장 정도의 자연스러운 글로 만들어줘
2. 화자를 '나'로 하여(1인칭) 쓴 자서전에 어울리는 회고담 느낌으로 작성해줘
3. 화자는 60대 초반의 남성으로 설정하며, 나이와 상황에 맞춰 간결하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말투를 사용해줘
4. 문장은 구어체를 지양하고 문어체에 가깝게 완성해줘
5. 과장하지 않고, 당시 느꼈던 당황과 곤란함을 있는 그대로의 느낌으로 담아줘


목수가 아닌 이상 나무로 책상이나 의자를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책상과 의자를 갖고 있다면 내 몸과 취향에 맞춰 고치는 건 훨씬 쉽습니다. 약간의 대패질과 망치질로 충분히 가능하죠.

자서전 쓰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AI파트너가 만들어준 문장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손을 봐서 내가 하고픈 말, 나의 목소리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AI파트너]
그날 아침, 출근길의 분주함 속에서 모든 것이 틀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따뜻한 커피 잔을 놓쳤고, 셔츠는 순식간에 젖어버리고 말았다. 하필 그 오후에는 매우 중요한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으니, 젖은 차림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스럽고도 곤란하게 만들었다.


[수정문장]
그날 출근을 서두르다가 모든 것이 틀어졌다. 아침마다 습관처럼 들리는 커피숍에서 사달이 벌어졌다. 점원으로부터 테이크아웃 컵을 받아드는 순간 나는 뭐에라도 홀린 듯이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 마침 오후에는 매우 중요한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커피로 얼룩진 셔츠를 입고 고객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스럽고, 곤란하게 만들었다.


어떤가요? 문장이 자연스러워졌나요, 아니면 더 어색해졌나요?

아무래도 관계없습니다. 스스로 하는 문장 수정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냥 AI파트너가 만들어준 문장을 그대로 ‘킵(keep)’해 두셔도 됩니다. 그날 있었던 사건 만큼은 고스란히 문장으로 남게 됐으니 사소한 수정 정도는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다시 하면 됩니다. 거친 상태로나마 초고를 완성한 후 AI파트너에게 윤문(潤文)을 맡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기억해야 할 사실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글을 쓰지 말고 말하세요. 갓난아이가 옹알이하듯 단어만 나열해도 됩니다.

그것만으로 여러분은 그렇게 높게만 느껴졌던 글쓰기의 벽을 뛰어넘을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의 과제는 여러분이 쓰고 싶은 어떤 사건을 단어로 나열하고, AI파트너에게 직접 문장을 요청해보는 것입니다. 1강에서 만들어뒀던 타임라인과 기억 트리거를 활용하는 방법도 좋겠네요.


오늘은 빈칸으로 남겨져 있던 여러분의 답안지에 단어 몇 개를 적어보는 날입니다.

여러분은 이 단어들이 문장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시게 될 겁니다.


‘그것만으로 자서전을 쓸 수 있다고?’


의심 따위는 넣어두세요.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이야기가 되면, 우리는 그걸 다발로 묶어 자서전을 완성할 겁니다. 몇 줄의 문장 적기에 성공한 순간 여러분께선 이미 자서전 쓰기를 시작하신 겁니다.


다음 강의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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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강의는 주 2회(매주 월/목요일)을 기본으로 진행합니다. 1강당 약 3회 분량입니다.

2. 댓글로 질문 받습니다. 짧게 즉답이 가능한 답변은 댓글로 드리고, 중요한 내용은 모아서 마지막 강의에서 QnA로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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