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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열에서 서사로, 한 꼭지 완성하기

글을 못 써도 괜찮아:일생 단 한 번의 자서전 쓰기【제2강_#3】

by Lazist

지난 두 강의를 통해 단어에서 문장으로, 문장에서 단락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함께 익혔습니다. 이제 초고 완성의 마지막 단계가 남았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흩어진 단락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 즉 자서전의 한 '꼭지'를 만들어볼 겁니다.

꼭지란 자서전을 구성하는 이야기들의 가장 작은 단위, 하나의 에피소드를 의미합니다. 마치 시트콤 시리즈의 한 회와 같으며, 연속극과는 다릅니다. 연속극의 한 회는 커다란 이야기의 일부분이지만, 시트콤의 한 회는 큰 이야기의 일부임과 동시에 독립된 이야기로서 고유의 완결성을 갖습니다.


일반적으로 꼭지는 200자 원고지 다섯 매(1000자) 정도 분량으로 완성됩니다. 흔히 ‘단행본 사이즈’라고 하는 신국판에 편집하면 대략 3~4쪽이 나오는 분량입니다. 이 분량은 필요에 따라 다소 길어질 수 있지만, 짧으면 짜임새를 갖추기 어려워집니다.

기억하세요. 우리는 지금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향해가고 있고,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의 분량이 필요합니다.



요청은 길게, 답은 짧게


본격적인 꼭지 만들기에 앞서 우리의 초고집필 작가, AI파트너의 작업스타일에 대해 몇 가지 알아둬야 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AI파트너가 작성하는 초고의 양은 우리가 제공한 정보량과 비례한다는 생각을 가져주세요. 핵심단어(키워드)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많은 양의 초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착하고 성실한 AI파트너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원고를 생성해줍니다. 하지만 정보량이 적으면 그만큼 원고의 밀도가 낮아지고, 헐거운 부분을 스스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이 틈새에 AI의 최대 약점 중 하나인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이 파고들 여지도 그만큼 커집니다.


둘째, AI파트너는 장문보다는 단문쓰기에 더 강합니다. 갖고 있는 정보의 양이 충분하고, 구조가 명확하다면 AI파트너는 긴 호흡의 초고를 한 번에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혹 맥락을 놓치거나 일관성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게다가 글쓰기는 원래 한 자에서 시작해 한 단어, 한 문장을 점층적으로 쌓으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작업입니다. 천재작가의 일필휘지(一筆揮之)는 판타지입니다. 글쓰기 도구에 불과한 AI파트너에게 그런 능력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셋째, AI파트너는 단문쓰기를 선호하지만 긴 질문이나 요청은 어지간해선 마다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만큼 길게, 그리고 명확하게 질문하고, 지시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AI파트너가 지닌 이상의 세 가지 특성을 고려해 저는 여러분께 ‘질문은 길게, 답은 짧게’라는 솔루션을 제안합니다. 아무리 길어도 하나의 사건, 두세 단락 이상의 초고를 요청하지 마세요. 레고블록 쌓아올리듯 직접 문장을 하나하나 추가해 이야기를 완성해야 합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이렇게 해야 AI파트너가 만들어준 초고를 온전한 ‘나의 목소리’ 안에 가둬둘 수 있습니다.



꼭지 단위로 타임라인 배열하기


다시 각자의 타임라인을 꺼내들 시간입니다.

사건의 세부단위는 등장인물의 행위와 감정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편의 서사, 즉 이야기는 사건의 연결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하나의 꼭지에서는 한 개의 사건 혹은 그 이상 다수의 사건이 연결되며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하나의 꼭지 제목 아래에 여러 줄의 타임라인이 배치돼야 한다는 얘기죠. 각 꼭지에 어떤 사건(타임라인)을 넣어야 할지는 자서전의 전개와 구조를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목차에 ‘첫 아이의 탄생’이라는 꼭지가 있다면, 다음과 같은 라인들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년도 월 사건 관련인물/사건/느낌

·1993 3 아내 임신소식 아내, 임신 테스트기, 설렘과 두려움

·1993 4 아내 입덧(심함) 아내, 과일나르기, 안쓰러움, 부모 실감

·1993 6 부모님 출산 준비 친정부모님 아기 용품 장만, 친아버지의 격려, 감사한 마음,

대를 이어 반복된다는 묘한 느낌

·1993 8 출산 당일 병원 대기실, 긴장, 무력감, 예상 외의 순산, ·안도감

·1993 8 아이 첫울음 눈물, 아버지가 됨, 아이의 첫 미소, 책임감

·1993 9 이름 짓기(한울) 온식구 공모,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한글이름(세상을 한 울타리로 보듬어라)


이 작업은 목차를 확정 짓고 초고를 쓰기 전에 진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손수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AI파트너에게 지시를 내라면 됩니다.

1강에서 완성한 타임라인과 목차를 첨부해 AI파트너에게 부속 사건의 배열을 요청합니다. 제미나이를 비롯한 대부분의 AI 채팅창에서 파일을 첨부하는 것이 가능합니다.(많은 경우 파일첨부 버튼을 [+]아이콘으로 표시합니다) 파일 첨부가 여의치 않다면 필요한 내용만 복사해서 직접 붙여넣어도 됩니다.


[예제 프롬프트: 목차에 사건(타임라인) 배열하기]

네게 자서전 목차와 함께 나의 타임라인을 제공할 거야. 목차의 각 꼭지 아래에 어떤 사건(타임라인)들을 배치할지 구체적으로 설계해줘.

[목차] ※ 파일첨부 또는 복사해서 붙여넣기
[타임라인] ※ 파일첨부 또는 복사해서 붙여넣기

요청사항
1. 각 꼭지에 타임라인의 어느 행들이 포함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배정해줘
2. 각 꼭지에 포함될 사건들을 간략하게 요약해줘
3. 각 꼭지의 예상 분량도 함께 제시해줘 (200자 원고지 기준)
4. 시간 순서와 주제의 일관성을 고려해 타임라인 순서를 배치해줘


이 프롬프트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초고를 시작할 모든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제1장 아버지가 되다

1. 첫 아이의 탄생
· 타임라인 45~49행, 예상 원고지 10매
· 포함 사건: 임신소식, 입덧 시기, 부모님 도움, 출산 당일 첫 울음과 미소, 이름 짓기
(온식구 공모,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한글이름 ‘한울’: 세상을 하나의 울타리로 보듬어라)
2. 육아전쟁의 시작
· 타임라인 50, 53행. 예상 원고지 7매
· 포함 사건: 첫 밤잠 설침, 분유 타기, 기저귀 갈기, 아내와의 역할 분담
3. 백일잔치
· 타임라인 54행, 예상 원고지 5매
· 포함 사건: 백일 준비, 부모님 초대, 감회,..

제2장 직장에서 살아남기

1. IMF의 그림자
· 타임라인 38, 42행, 예상 원고지 8매
· 포함 사건: 구조조정 발표, 동료들의 퇴사, 불안감, 가족 부양책임

··· <후략> ···



AI파트너와 함께 완성도 높은 초고 쓰기


지금부터 실제로 한 꼭지의 초고를 써나가는 과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초고 쓰기는 1)꼭지 구성, 2)개별 사건단락 생성, 3)단락 연결, 4)전체 점검 순으로 진행합니다.

여러분께 제안한 솔루션 ‘요청은 길게, 답은 짧게’를 준용한 프로세스입니다.


첫 번째 단계 ‘꼭지 전체구성’에서는 각 사건을 어떤 순서로 연결할 것인지, 사건별로 얼마의 분량을 배정할 것인지를 가늠해 봅니다. 예제 프롬프트에 필요한 타임라인 전체를 복사해 넣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목차에 사건(타임라인) 배열하기’ 프롬프트에서 어느 정도 설계의 윤곽을 잡았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된다면 생략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무방합니다.

아래는 예제 프롬프트와 실제 실행결과입니다.

예상보다 많은 내용이 출력돼 요청사항에 ‘한눈에 파악하기 좋게 출력해줘’라는 지시를 추가했습니다.


[예제 프롬프트: 꼭지 구성]

내 자서전의 한 꼭지를 쓰려고 해. 타임라인에서 선택한 아래 사건들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엮고 싶어. 이 사건들을 어떤 순서와 구성으로 전개하면 좋을지 설계해줘.

타임라인 사건 목록
·1993 3 아내 임신소식 아내, 임신 테스트기, 설렘과 두려움
·1993 4 아내 입덧(심함) 아내, 과일나르기, 안쓰러움, 부모 실감
·1993 6 부모님 출산 준비 친정부모님 아기 용품 장만, 친아버지의 격려, 감사한 마음,
대를 이어 반복된다는 묘한 느낌
·1993 8 출산 당일 병원 대기실, 긴장, 무력감, 예상 외의 순산, ·안도감

요청사항
1. 각 사건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해줘
2. 시간 순서와 감정의 흐름을 고려한 구성을 제안해줘
3. 각 사건을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면 좋을지 알려줘
4. 전체 분량은 200자 원고지 10매 정도(2000자)를 목표로
5, 핵심내용을 중심으로 한눈에 파악하기 좋게 출력해줘
스크린샷 2025-10-05 124419.png


AI파트너는 시간 순으로 여섯 개의 사건을 연결해 기승전결 구조로 마무리 짓자고 제안합니다. 애초의 계획대로 10매(2000자) 분량에 담기에는 다소 넘치는 내용 같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합니다. 계획을 수정해서 꼭지를 분리해도 되지만, 차곡차곡 단락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판단해도 늦지 않으므로 일단 계속 진행히겠습니다.


두 번째 단계 ‘개별 사건단락 생성’은 2-1강, 2-2강에서 익힌 대로 단어를 주고 문장을 얻는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이 꼭지는 총 6개 사건으로 구성돼 있으므로, 여섯 번에 걸쳐 같은 작업을 반복합니다. 단, 우리의 AI파트너는 5번과 6번 사건을 하나로 묶어 '승(承)'으로 구성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제안 그대로 5~6번 사건에 해당하는 초고를 한 번에 얻어낼지, 각각 따로 얻어낼지는 각자 판단에 따라 선택하면 됩니다.


[예제 프롬프트: 개별 사건단락 생성]

타임라인의 첫 번째 사건을 단락으로 만들어줘.

타임라인 정보
·1993 3 아내 임신소식 아내, 임신 테스트기, 설렘과 두려움

추가 정보(6하원칙)
언제: 1993년 3월 어느 토요일 저녁
어디서: 우리 집 거실
어떻게: 아내가 조심스럽게 임신 테스트기를 보여줌
왜: 결혼 2년 차, 아이를 기다리던 중

요청사항
1. 화자는 30대 초반 남성, 1인칭 시점
2. 자서전 회고담 톤, 문어체
3. 6-8문장 정도의 한 단락으로 (약 400자)
4. 설렘과 두려움이라는 양가감정을 구체적으로
5. 이 꼭지의 첫 단락이므로 독자의 관심을 끄는 도입부로
1993년 3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이었다. 결혼 2년 차, 아내와 나의 보금자리였던 작은 아파트 거실에는 늦은 저녁의 평온함이 감돌고 있었다. 그때 욕실에서 나온 아내가 말없이 내민 것은 자그마한 플라스틱 막대기였다. 선명하게 그어진 두 줄을 확인한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는 듯했다. 애타게 기다리던 소식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쁨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 벅찬 설렘의 파도가 채 가시기도 전에, 등 뒤에서는 낯선 두려움이 서늘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제껏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가, 거대한 현실이 되어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르는 듯했다. 기쁨과 두려움이 뒤엉킨 그 밤, 나는 비로소 어른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턱에 섰음을 직감했다.


문장의 톤앤매너(tone and manner), 분량까지 필요한 모든 부분에 프롬프트 변화를 주며 문장을 완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스타일 즉 ‘내 목소리’를 제대로 구현해줄 프롬프트 형식과 문안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높은 완성도까지 원고를 계속 수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초고 단계에 있으며, 두 개의 과정을 더 거쳐야 한 꼭지의 초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나의 인생 한 토막이 이야기로 탄생하는 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게 더 중요합니다.


[예제 프롬프트: 단락 연결]

아래 단락들을 하나의 완결된 꼭지로 자연스럽게 연결해줘.

[단락 1]
[단락 2]
[단락 3]
···

요청사항
1. 단락 사이에 자연스러운 연결 문장 추가
2. 시간의 흐름이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3. 반복되는 표현이 있다면 다양하게 수정
4.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야기처럼 읽히도록
5. 마지막 단락은 여운이 남도록 정리
6. 전체 톤의 일관성 유지
[예제 프롬프트: 전체 점검]

아래 글은 내 자서전의 한 꼭지야. 전체를 읽고 개선할 점을 알려줘.

[꼭지 전체 내용]

점검 항목
1. 문장의 자연스러움
2. 톤의 일관성(회고담 톤이 유지되는지)
3. 반복되는 표현이나 단어
4. 시간의 흐름이 명확한지
5. 감정의 변화가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지
6. 각 단락 간 연결이 매끄러운지
7. 전체 분량이 적절한지(너무 길거나 짧지 않은지)


3단계 ‘단락 연결’과 4단계 ‘전체 점검’은 각 사건을 담은 단락을 부드럽게 연결함으로써 꼭지를 완성하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구성과 서술에 요류가 없는지 검토하는 과정입니다. 위의 예제 프롬프트를 참고하세요.


‘요청은 길게, 답은 짧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프롬프트에 모든 단락을 복사해넣어 연결을 시도하고, 이로써 완성한 하나의 꼭지 전체를 담아 다시 검토를 요청하세요. 채팅창이 터질 정도로 긴 라인들이 담기겠지만, 우리의 AI파트너가 묵묵히 모든 작업을 수행해줄 겁니다.


오늘 드릴 과제는 모두가 예상하고 계시겠죠?

네. 맞아요. 위의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면서 여러분만의 인생을 담은 ‘한 꼭지’를 완성하는 것이 오늘의 과제입니다.


기억하세요. 요청은 길게, 답은 짧게. 그리고 레고블록 쌓듯이 한계단 한계단.


한 권의 자서전은 대략 40개 내외의 꼭지를 수용합니다.

한 꼭지를 완성한다면 자서전 완성 40분의 1을 향해 나아간 거죠.

여러분의 ‘진짜’ 출발을 응원합니다.


3강 ‘문장 다듬기: 좋은 문장, 나쁜 문장 옥석 가려내기’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다음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1주간 2회에 걸쳐 별강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과제 '한 꼭지 만들기'에 좀 더 집중하실 수 있도록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주제를 골라 진행하겠습니다.

별강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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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강의는 주 2회(매주 월/목요일)을 기본으로 진행합니다. 1강당 약 3회 분량입니다.

2. 댓글로 질문 받습니다. 짧게 즉답이 가능한 답변은 댓글로 드리고, 중요한 내용은 모아서 마지막 강의에서 QnA로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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