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RAW데이터 확보로 디지털아카이브 첫걸음 떼기

글을 못 써도 괜찮아:일생 단 한 번의 자서전 쓰기【제5강_#1】

by Lazist

여러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난 강의까지 우리는 자서전을 어떻게 시작하고, 구성하고, 쓰며, 책으로 완성하는지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손에는 지금 무엇이 남겨져 있나요? 여러분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원고겠죠.



자서전 원고의 진정한 의미, 텍스트 RAW데이터


이제부터 조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집중해주세요.

여러분이 지금 열심히 쓰고 계신 자서전 원고, 이것은 사실 '텍스트 형태의 RAW데이터'입니다. RAW 데이터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지나요? RAW는 '날것', '가공하지 않은'이란 뜻입니다. 예를 들어 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찍으면 RAW 파일이라는 게 생깁니다. 아직 가공하지 않은 원본 사진 데이터죠. 이 파일 하나로 밝은 사진도 만들고, 어두운 사진도 만들고, 흑백사진도 만듭니다.

여러분의 자서전 원고가 바로 그런 겁니다. 텍스트(글자)로 된 RAW데이터, 이것 하나로 여러 가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지난 강의까지 다뤘던 종이책도 그 중 하나고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서랍 속이나 앨범 속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오래된 사진, 이제는 어떻게 틀기도 어려운 비디오테이프. 이것들도 여러분의 인생을 설명해주는 또 다른 형태의 RAW 데이터들입니다. 어쩌면 글보다 더 생생하게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들이죠.



RAW데이터 모으기의 첫발, 디지털라이징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기를 꾸준히 쓰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일어난 일들을 따로 기록해두지도 않죠. 그래서 텍스트 RAW데이터를 갖기 위해서는 새롭게 뭔가를 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자서전 쓰기를 열심히 공부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사진이나 영상 같은 RAW데이터는 다릅니다. 이것들은 만들지 않고 모으기만 하면 되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많은 RAW 데이터들이 아날로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오래된 사진은 종이에 인화돼 있고, 영상은 VHS나 8mm 테이프에 담겨 있습니다. 아날로그 데이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바래고, 곰팡이가 피고, 자성이 사라집니다. 지금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곧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디지털라이징(Digitalizing)'입니다. 아날로그 데이터를 디지털 데이터로 바꾸는 작업을 말합니다.


어렵게 들리시나요? 사실 여러분은 이미 이 작업을 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스마트폰으로 오래된 사진을 찍어두신 적 있으시죠? 그게 바로 디지털라이징입니다.


RAW데이터를 갖고 구체적으로 뭘 만들겠다는 생각은 당장은 접어두셔도 됩니다. 일단 모으세요. 그리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 디지털라이징을 하는 겁니다. 조개에서 진주를 찾아내고, 그걸 닦고 깎아내서 진주알을 만드는 것처럼요. 팔찌를 만들든, 귀고리·목걸이를 만들든 꿰는 방법은 먼저 생각 안 해도 됩니다. 진주알만 충분하다면 뭐든지 다 만들 수 있습니다.



디지털라이징의 다양한 방법들


디지털라이징의 대상은 뭐가 있을까요? 앞서 짚어드린 대로 사진이나 비디오테이프 외에 음성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 목소리, 가족 모임 때 녹음한 대화 같은 것들이죠. 예전에는 노래방에서도 녹음을 해서 기념으로 주던 시절이 있었죠? 운이 좋으면 이런 것들도 어딘가에 보관돼 있을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기록매체에 담기지 않은 실물자료들이 있습니다. 상장, 상패, 훈장, 오래된 명함, 손편지, 일기장, 심지어 학창시절 받았던 성적표까지.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증명하는 소중한 자료들입니다.


매체에 담기지 않은 실물자료는 일단 다 사진으로 찍어두세요. 대부분은 스마트폰 사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밝은 곳에서 펼쳐놓고,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찍으면 됩니다. 액자에 든 사진은 유리를 빼고 찍으세요. 반사 때문에 잘 안 보일 수 있으니까요. 촬영할 때는 초점을 정확히 맞추고, 실물이 왜곡돼 보이지 않도록 각도를 잘 맞추세요. 가능하면 스마트폰 카메라 설정에서 해상도를 최고로 올려두시면 좋습니다. 실물 자료를 찍으면 보통은 오래된 사진과 각종 기록매체 정도가 남을 겁니다.


먼저 사진부터 설명 드리죠. 앨범 속 사진, 액자에 든 사진, 서랍 깊숙이 넣어둔 사진들. 이것들을 디지털로 옮기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스마트폰으로 직접 찍는 방법, 둘째는 동네 사진관에 맡기는 방법, 셋째는 스캐너를 활용해 직접 스캔하는 방법입니다.


우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방법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겠죠. 기본적으로 실물자료를 촬영하는 방법과 같습니다. 이 방법의 단점은 품질이 가장 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디지털라이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본 품질을 최대한 살리는 겁니다.


동네 사진관에 맡기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편하고 가격도 꽤 합리적입니다. 앨범이나 사진(인화지·필름)을 들고 가서 디지털라이징을 의뢰하면 USB메모리나 CD에 담아줍니다. 비용은 사진관마다 다르지만 보통 사진 100장 기준으로 3~4만원 정도입니다. 약간의 비용을 더 부담하면 보정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품질은 스마트폰 촬영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단점은 작업에 며칠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서비스 가능한 사진관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원본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맡길 때 꼭 확인하세요. 찾아보면 온라인에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여러 곳 있고, 장단점은 엇비슷합니다.


마지막은 스캐너를 구입해 직접 하는 것이죠. 가능하기만 하다면 저는 이 방법을 추천합니다. 자동급지기가 장착된 스캐너는 활용도가 매우 높습니다. 처음 세팅할 때는 자녀분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세팅이 완료된 상태라면 사이즈대로 분류해 급지기에 올리기만 하면 알아서 스캔 후 컴퓨터 저장까지 한 번에 수행합니다. 스캐너 가격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지만 30만 원 내외에서 적당한 기기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중고품을 정비한 일명 리퍼비시(Refurbished) 제품이라면 10만 원대에서 구입이 가능합니다. 물론 디지털라이징 품질은 스캐너 성능에 따라 달라집니다. 보통은 사진관에 맡겼을 때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스크린샷 2025-11-09 064547.png

비디오테이프와 카세트테이프와 같은 아날로그 미디어의 디지털라이징은 사진보다 조금 더 복잡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이런 미디어를 재생할 수 있는 플레이어 자체가 귀해졌으니까요. 운 좋게 작동이 되는 플레이어를 갖고 있다면 모르지만, 없다면 전문업체를 찾아야 합니다.


사진 스캔 서비스를 해주는 사진관에서 비디오테이프나 카세트테이프도 디지털라이징을 해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이 흔한 편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온라인에서 전문업체를 물색하는 게 더 빠를 수 있습니다. ‘디지털라이징’으로 검색해보시면 적잖은 업체들이 나옵니다. 이런 곳들은 보통 사진 스캔 작업까지 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크린샷 2025-11-09 065909.png 출저 : 바로그(valog.co.kr)



데이터는 정리를 통해 가치가 올라갑니다.


열심히 RAW데이터들을 모으다보면 갑자기 막막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이걸 갖고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무엇부터 해야 하지?"


여러분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것들을 잘 분류해서 목록을 만드는 겁니다. 확보된 RAW데이터가 무엇인지 정리부터 하는 거죠. 공책에 적어도 되고, 엑셀이나 구글 스프레드시트 등을 쓸 줄 아신다면 그걸 사용하셔도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핵심정보만 추려내 단순한 목록을 만드는 겁니다. 정보량이 많으면 입력부터가 어렵지만, 나중에 그걸 파악하거나 활용할 때도 애를 먹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시간 정보죠. 자료가 생성된 날짜, 즉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은 날짜와 사건(이유) 등을 간략하게 기입하시면 됩니다.


아예 파일명 부여 방식을 정해 그 자체로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날짜-사건’ 등으로 파일명을 분류하는 거죠. 날짜가 불명확하면 ‘00’으로 표시하면 됩니다.


1991-10-01-아들 첫 걸음마.mp4

2001-03-00-가족들과 노래방.mp3


이런 식으로 파일명을 짓고 형태에 따라 ‘개인아카이브_영상’, ‘개인아카이브_음성’ 등으로 폴더를 만들어 저장합니다. 이렇게 해두면 파일탐색기에서 필요한 내용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거! 바로 파일 백업(Backup)입니다.

외장하드나 USB메모리에 담아뒀다고 안심하시면 안 됩니다. 무조건 2개 이상의 매체에 담아 안전하게 보관하시길 바랍니다. 온라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에게는 구글 계정이 있었죠? 구글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구글드라이브(drive.google.com)는 개인에게 15GB의 저장공간을 무료로 제공합니다.

저는 이 같은 RAW데이터 확보 및 정리 작업을 자서전 쓰기와 함께 병행하시길 권합니다. 오래된 사진 한 장, 옛날 영상 한 편을 보다 보면 잊고 있던 기억이 물밀듯 되살아납니다. 그 기억들이 자서전의 소중한 재료가 되어줄 겁니다.



개인 디지털 아카이브의 소장품, RAW데이터


정리된 상태의 데이터는 그 자체로 여러분의 인생을 드러내고 증명하는 귀중한 사료(史料)입니다. 박물관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사료를 날 것 그대로 전시하고 보존하는 곳입니다. 예를 들어 박물관은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유품을 전시하지만, 장군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는 전시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RAW데이터가 담긴 컴퓨터와 외장하드, USB메모리는 그 자체로 훌륭한 개인 박물관(아카이브)입니다. 생일이나 명절날 가족이 모였을 때 TV에 저장매체를 연결해 이 파일들을 재생해보세요. 그곳이 바로 여러분의 개인 박물관이 됩니다.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리고, 가족들과의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RAW데이터는 단순한 파일이 아닙니다. 가족의 역사를 담은 여러분의 소중한 디지털 자산입니다.


OSMU(One Source Multi Use)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하나의 소스로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재생산한다는 뜻입니다. 소설이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되고, 게임이 되는 과정을 생각해보시면 쉽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글과 사진, 영상, 음성이라는 다양한 종류의 RAW데이터를 갖게 됐습니다. 즉 소스가 확보된 겁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개인사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준비가 지금 막 끝났습니다. 이제부터는 자서전은 물론이고 포토북, 영상 자서전, 나만의 테마 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가능합니다. 다음 시간에 좀 더 구체적으로 관련 내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다음 강의에서 뵙겠습니다.





1. 이 강의는 주 2회(매주 월/목요일)을 기본으로 진행합니다. 1강당 평균 3회 분량입니다.

2. 댓글로 질문 받습니다. 짧게 즉답이 가능한 답변은 댓글로 드리고, 중요한 내용은 모아서 마지막 강의에서 Q&A로 진행하겠습니다.

keyword
이전 17화‘팔리는 책’ 꼴 갖춘 허브데이터 직접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