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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Jul 28. 2022

Ep 7_1. 사진을 시작한 이유

기록의 관점에서 by 아카이버 헨리

남는 것은 사진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보자. 그것은 보통 5살 내외의 뇌리에 아주 강하게 남았던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00년생인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2002년 내가 살았던 아파트 단지 공터에서 빨간 옷을 입고 다 함께 월드컵 축구 응원을 했던 순간이다. 그뿐만 아니라 2003년 여동생이 태어났던 순간과 2004년 제주도 여미지 식물원에서 기차를 탔던 기억도 생생하다.


어떻게 내겐 남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오래된 기억들이 있는 걸까? 나는 그 기억의 비법을 방구석에 박혀있는 아버지의 사진첩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무려 10권이 넘는 두꺼운 앨범 속에 나와 우리 가족의 모든 추억이 기록되어 있던 것이다. 인화한 사진 한 장 한 장이 지금의 나를 아버지 작품의 피사체였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도록 도와주었다.


사진이 가지는 힘을 느낀 나는 자연스레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물론 지금도 사진을 취미로 하시는 아버지의 중고급 DSLR 카메라가 멋져 보였던 이유도 있다) 한가로운 시간에는 감각적인 장소를 방문하여 시간을 보내거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즐기는 내게 카메라는 최고의 친구가 되었다.


사진을 찍으며 한 가지 더 깨달은 점이 있다. 셔터를 눌러 상이 이미지센서에 맺히는 순간 촬영하는 사람의 머릿속에도 그 순간이 강렬하게 남는다는 점이다. 나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사진을 찍어왔지만, 사진첩에서 오래된 사진을 꺼내 보아도 사진을 담았던 장소, 시간, 함께한 사람, 심지어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떠오르곤 한다.


구도와 노출을 조절하여 보기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이 나의 몫이지만, 촬영이라는 행위를 통해 금방 잊힐 수도 있는 일상적인 순간까지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저장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사진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추억이 되기에 나는 사진을 찍는다.


P.S.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 선수도 세리머니를 보아하니 사진의 힘을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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