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도'를 그렸다고 '조직'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by 인사팀장 K


인사업무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하는 것은 단연 조직의 신설, 폐지, 그리고 R&R조정이다. 2008년도에 인사업무를 시작하고 71.39% 이상은 조직과 보임 업무를 담당했다. 조직의 신설 및 폐지와 그에 따른 보임과 해임... 민간이던 공공이던 하물며 정부이던 간에 조직은 연중에는 수시로, 연말에는 대량으로 바뀐다. 10년 넘게 해오면서도 같은 질문이 자꾸 떠오른다. 대표이사, 본부장, 말단 상무까지 왜 다들 그렇게 조직에 집착할까? 조직이란 무엇일까?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나는 조직을 "CEO가 경쟁이라는 전쟁에 나가 쓸 무기"라고 할 결론 내린다.




1592년 충주 탄금대, 군대의 미흡한 무기는 패배를 부른다


1592년 음력 4월 28일, 조선의 명장 신립 장군은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다. 그가 믿은 것은 조선 최고의 기병대와 자신의 활 솜씨였다. 하지만 상대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은 당시 최첨단 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결과는 처참한 전멸이었다. 진흙탕에 빠진 기병은 조총의 먹잇감이 되었고, 신립은 강물에 투신했다. 이 역사적 비극이 주는 교훈은 서늘하다.


경쟁사는 AI와 데이터라는 '조총'을 들고나오는데, 우리만 과거의 성공 방식인 '칼과 활'을 고수하는 조직을 유지한다면? 그 결과는 단순한 시장점유율 상실 또는 실적 하락이 아니다. 조직 전체의 몰살이다. 경영진이 조직을 쪼개고, 합치고, 없애는 행위는 단순한 변덕이 아니다. 변화하는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직원들은 왜 맨날 조직이 바뀌냐, 헷갈린다, 귀찮다, 불편하다, 의미 없다고 불만 와이파이를 증폭시킨다)




'하드웨어'만 던져주는 경영자의 지적 태만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많은 경영진이 조직 개편 시즌이 되면 '박스 그리기 놀이'에 심취한다. (정말 심취한다.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화이트보드에 네모칸을 그리고, 그럴듯한 영어 약자로 된 '팀 명칭'을 지어주고, 팀장에게 '실장'이라는 감투를 씌워준다. 그러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선언한다. "자, 이제 한번 하고싶은 대로 해봐. 성과를 만들어봐."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오만이다. 단언컨대, 하드웨어(껍데기)만 있다고 해서 조직이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이름표를 바꿔 달아준다고 무능한 조직이 유능해지는가? 책상 배치를 새로 하고 간판을 바꿔 단다고 해서 없던 혁신이 솟아나는가? 소프트웨어(Software)가 없는 하드웨어는 그저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영혼과 체계가 없는 조직은 '팀(Team)'이 아니라, 그저 우왕좌왕하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의 집합소'일뿐이다. 현명한 경영자라면 하드웨어라는 틀을 만든 후, 반드시 그 안에 생명을 불어넣는 두 가지 소프트웨어를 직접 설치해야 한다.




Software 1. 존재 이유와 미션, 우리는 왜 여기에 모여 있는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멍하니 서로 얼굴만 쳐다보게 할 수는 없다. (실제 그러한 조직, 정규조직은 아니어도 그러한 TFT가 기업 내부에 매우 많다.) 가장 먼저 주입해야 할 소프트웨어는 '미션'이다. 단순히 "매출 1000억 달성" 같은 돈,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조직이 왜 탄생했는지, 전사적으로,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지, 그 '존재의 이유(Raison d'être)'를 명확히 정의해 주어야 한다.


만약 직원들이 조직의 미션을 "그저 돈 벌어서 내 월급 받고 성과급 타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 조직의 미래는 안 봐도 뻔하다. 용병은 돈이 떨어지면 떠나지만, 애국심으로 정신무장한 군대는 지옥 끝까지 간다.


경영자는 끊임없이 알려줘야 한다. "우리들의 일이 회사를 넘어 이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 질문에 답을 주지 못하는 그 경영진은 리더의 자격이 없다. 월급 준다고 회사와 경영진이 책임을 다했다고 착각하지 말자. 아무개 직원이라고 쉽게 부르는 그 사람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20대 중후반부터 60세까지,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를 바친다. 반드시 가슴에 와 닿는 의미로 보답해야 한다.




Software 2. 지휘명령체계, 누가 누구에게 지시하고 누가 누구에게 보고하는가?


미션이 조직의 심장이라면, 척추는 바로 '지휘명령 체계'다. 나는 이 부분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조직이 망가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질서의 붕괴'에서 오기 때문이다. 조직을 세팅하고 구성원을 배치했다면, 누가 누구에게 지시하고, 누가 누구에게 보고하는지(Report Line)를 잔인할 정도로 명확하게 확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그 어떤 모호함이나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옛날 조직에서 배워온 옛날 사람들은 여기저기 걸쳐둔다. "A실장에게 보고하되, 중요 사안은 B실장에게도 공유하라" (이렇게 해두고 자기는 일 다했다고 생각하는 임원들..) 이런 어설픈 '점선 보고(Dotted Line)'가 조직을 망친다.


전쟁터에서 병사가 "지금 누구 명령을 들어야 하죠?"라고 묻는 순간, 그 부대는 전멸이다. 리포트 라인이 꼬이거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면, 그 틈새에서 '사내 정치'가 독버섯처럼 피어오르고 교묘한 '책임 떠넘기기'가 시작된다. (관련해서 너무 할 말이 많다. 사례가 너무 많다. 천천히 말씀드리겠다.) 기억하라. 이 지휘명령 체계는 단순한 상하 관계가 아니다. 한편, 인사팀은 이 중요한 지휘명령 체계를 현실에서 평가 권한으로 구현해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임원들이여, 껍데기만 만들고 만족하지 마라


조직도는 그림 그리기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책임의 설계도다. 경영자들이여, 멋진 조직도와 세련된 명함을 만들어준 것으로 당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것은 칼집만 화려하게 장식하고, 정작 칼날은 무디게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 그 조직이 달려가야 할 방향(미션)과, 흔들리지 않는 질서(지휘명령 체계)라는 소프트웨어를 완벽하게 이식하라.


1592년 탄금대의 몰살을 2026년 회사에서 재현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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