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좀 무겁게 느껴지는 날엔 미장원에 간다. 유난히 머리숱이 많은 나는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금방 그 무게가 느껴진다. 뒷목이 뻐근해지고 어깨는 바윗돌을 얹은 듯 무거워지면서 눈에 피곤함이 밀려온다.
몇 달 전부터 딸아이가 자꾸만 어깨가 아프다며 주물러 달라고 했다. 어깨를 꾹꾹 눌러주며 "자세를 바르게 해라. 한 자세로 오래 있지 마라."는 등의 잔소리를 했다. 얼마 후에는 눈이 아프다며 자꾸 깜박이기에 병원에 갔다. 정상이란다. 뭐가 문제일까. 아이를 눈여겨봤다.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것을 찾지 못한 채 하릴없이 아이의 뒷목을 주물러 주다가 어느 날 문득 긴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딸아이도 나를 닮아 머리숱이 많았다. 긴 머리의 무게에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올해 들어 예쁜 공주 대신 힘세고 변신 잘하는 로봇을 더 좋아하니 머리 자르자는 말에 흔쾌히 응해 주리라 생각했는데, 딸아이는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용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로봇을 좋아하면 짧은 머리를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은 내 착각일 뿐이었다. 아이의 머릿속에 있는 세상에서, 로봇은 긴 머리를 찰랑이는 예쁜 공주님을 지키기 위해 악당들과 싸우고 변신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공주는 꼭 긴 머리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아이와 설전을 벌였다. 아이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일단 긴 머리는 드레스와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고, 여러 가지 모양의 머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공주답다는 것이었다. 동화 속 머리 긴 공주님에 익숙한 나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공주다우려면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딸아이는 긴 머리를 고수하고자 했다. 수시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목을 이리저리 돌리고 눈을 자주 깜박이는 불편함 정도는 감수하기로 한 것 같았다.
좋은 엄마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이의 의사는 어디까지 존중해 줘야 하는 것인가. 며칠을 기다리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엄마는 아이의 보호자’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를 긴 머리로 인한 장애에서 구해내야 할 의무를 갖고 있었다. 피치 못할 경우에는 ‘선 조치 후 고지’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아이를 미장원에 데려갔다. 엄마 대신 자신을 의자에 앉히자 아이는 배신감에 눈물을 글썽였으나 이내 사태 파악이 된 듯 머리를 맡겼다. 싹둑싹둑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을 보고 싶지 않은지 아이는 내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마음속으로 공주를 떠나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나도 마음이 어두워졌다. 단발머리가 참 잘 어울린다고 너스레를 떨어도, “이젠 목도 아프지 않고 눈도 안 피곤하지?” 하고 물어도, 딸아이는 말이 없었다. 축 처진 어깨에 땅만 내려다보는 아이에게 나도 할 말이 없었다. 한시도 입을 가만 놔두지 않던 아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다니. 이 일을 어찌 수습한담. 머릿속이 복잡했다.
퇴근해 들어오던 아빠는 뛰어나오는 딸이 없어 의아해했다. “우리 공주님이 어디 있지?” 나는 아이가 공주를 찾는 아빠에게 달려들어 울기라도 하면 어쩌나 순간 걱정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딸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빠에게 달려 나왔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아빠,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공주가 누군지 알아? 백설 공주야! 신기한 거울이 말해줬어.”
방 안을 들여다보니 공주 시리즈 동화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긴 머리를 하고 있는 공주들 사이에 단 한 명 백설 공주만 검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저녁 내내 자신과 닮은 공주가 있는지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백설 공주의 머리가 짧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사실 동화 속 공주들의 모습은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낸 상상이며 대를 물려준 고정관념이 아닌가. 공주의 머리가 짧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월트 디즈니에게 감사했다.
제법 짧은 머리에 익숙해진 듯 보이는 딸에게 물었다.
“우리 백설 공주는 꿈이 뭐야?”
“내 꿈은, 머리 긴 백설 공주가 되는 거야.”
지조 있는 딸! 공주는 긴 머리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엄마 꿈은, 우리 딸 꿈이 이뤄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