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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23. 2022

그녀의 책상

 낯선 땅에서 언니와 재회를 했다. 넓지 않은 공항 출구에 꽤 많은 사람들이 그리운 얼굴들을 찾고 있었다. 마중 나온 언니와 눈이 마주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귀 밑을 살짝 덮는 단발머리의 양쪽 길이가 달라 보였다. “여기선 이게 유행이야?” 했더니, 미용사가  커트를 하다가 왼쪽이 긴가 오른쪽이 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꾸 자르길래 큰일 나겠다 싶어 “됐어요!” 하고 나왔단다. 더 놔뒀으면 가발 쓰고 다닐 뻔했다는 언니 말에 작은 공항을 나서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택시를 타고 숙소에 가는 동안  언니는 쉴 새 없이 기사와 대화를 나눴다. 언니의 중국어 실력이 놀랄 만큼 좋아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모르는 사람과 말을 섞는 것조차 편치 않아하던 언니가 타국에서 낯선 외국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회화 공부하기에 그만큼 좋은 방법도 없겠다 싶었다. 언니는 중국어를 마스터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중이었다. 


 이년 전, 집 앞에서 잠깐만 데이트하자는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바쁜 언니가 일부러 날 찾아왔을 땐 ‘뭔가 중요한 일이 있구나.’ 직감했다. 저녁놀이 지고 밖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언니는 무겁게 말을 꺼냈다. 중국에 가서 일이 년 정도 어학연수를 하고 오겠다고. 나이 들어가려니 맘에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지금 안 하면 한이 될 것 같아서 결심했다고. “연로하신 아버지를 당분간 찾아뵙지 못하는 게 가장 마음에 걸리는데 우리 동생 믿고 갔다 올게. 미안하다….”


 언니는 세상의 잣대로 보면 무모해 보이는 일들에 도전하며 살아온 것 같았다. 시골이었지만 그런대로 넉넉한 형편이었던 부모님 밑에서 학창 시절 전교 일등을 하던 언니에게 아버지는 교대에 진학할 것을 제안하셨다. 위로 큰오빠와 밑으로 작은오빠가 이 삼 년 터울이니 학비 문제나 장래성으로 보아 교대가 아니면 다른 곳은 보내줄 수 없다고 하셨다. 꿈이 달랐던 언니는 취업을 해서 자신이 돈을 벌어 원하는 대학에 가겠노라며 은행에 취직을 했다. 그렇게 언니는 세상에 자신의 방식대로 도전장을 던진 셈이었다.


 언니가 생활하는 유학생 기숙사에 도착했다. 침대 하나에 책상 하나, 화장실 하나가 딸린 혼자만의 공간. 작년 여름 첫 학기를 마치고 퉁퉁 부은 얼굴로 한국에 왔었다. 아무래도 큰 병이지 싶어 건강 검진 차 집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집에서 하룻밤 자고 나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언니는 가능한 짧은 시간 안에 목표를 이뤄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주구장천 한자리에 앉아 공부를 했단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아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길어지니 몸이 시위를 한 것 같다며 “좀 쉬엄쉬엄 하지 뭐.” 하며 돌아갔었다.


 “저 책상이네?”

 “응.” 

 언니가 몇 시간씩 앉아 책과 씨름했다는 그 책상이 궁금했었다.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다니던 대학에서 십 년 넘게 공부하고 세 개나 되는 졸업장을 손에 쥐었던 언니의 책상은 밥상을 겸용했던 조그만 상이 었다. 언제든 책을 펴려면 더불어 펴야 했던 접이식 소반. 집에 책상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언니는 왜 밥상을 펴고 공부하는지 궁금했다. 언제든 시간이 날 때마다, 공간이 생길 때마다 공부를 하려니 이동식 책상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언니의 방을 드나들 때마다 책을 보고 있는 언니를 보며 나는 그리 짐작했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봤음직한 나무로 만든 책걸상은 일인실 유학생 방을 더 외로워 보이게 했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보았다. 허리를 곧추세워야 높이가 맞는 책상. 나보다도 키가 작은 언니는 얼마나 더 꼿꼿하게 앉아있어야 했을까. 외로움이 두려움으로 변하려 할 때마다 움츠러드는 어깨를 펴기 위해 기를 쓰고 이 책상에 앉았을 언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거기 앉아서 질리도록 공부했다. 당분간 책도 안 볼 거야.”

 목표로 삼았던 시험을 며칠 전에 끝냈다는 언니가 책상을 보며 말했다. 내가 머문 며칠 동안 언니는 한 번도 책상에 앉지 않았다. 한 달 후면 집에 가니까 은행에서 잔고를 찾고 전화 중단 신청도 해야 한다며 외로운 유학생활을 정리할 생각에 들떠있었다. 지난 세 학기 동안 얼마나 집에 가고 싶었으면 한 달 후 집에 간다는 말을 하고 또 했다. 


 여전히 낯선 공항에서 한 달 후를 기약하며 언니의 배웅을 받았다. 한 달 후 언니는 어떤 책상 앞에 앉아 있을까. 언니 키에 맞는 것이라면 좋겠다. 언니에게 꼭 맞는 방석은 내가 준비해야지.

 

 분명 타국에서 헤어지는 가슴 아린 이별 이건만 언니의 표정이 밝았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언니는 그렇게 밝은 표정으로 또 한 명의 기사와 대화를 나눌 것이다. 돌아서는 내 발걸음도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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