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너를 보내며 마지막으로 네 등을 쓰다듬어 보았다. 그동안 수도 없이 해왔던 말이지만 한 번 더 속삭여줬지. 수고 많았다고, 고마웠다고….
그날, 좁은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맞은편엔 이미 오던 차가 있었어. 후진해서 길을 비켜주려는데 네가 움직이지 않더구나. 빗길이 미끄러워 그런가 싶어 다시 시도해 봤지만 내내 달려온 네가 움직이질 않으니 난감할 노릇이었단다. 하릴없이 비상등을 켜고 한동안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지.
정비소에선 워낙 주행거리가 많아 여러 가지 부품이 노화되어 일어난 일 같다고 했어. 너와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난 왜 네가 늙어간다는 것을 외면해 왔을까.
나는 이참에 너에게 며칠간의 요양기간을 주기로 했어. 구석구석 진찰을 받게 하고 필요하다면 수술대에도 올려줄 생각이었지.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차원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줄 정비소를 수소문해서 입원 절차를 밟으려고 했어. 하지만 어렵게 만난 네 주치의는 자신이 해 줄 일이 별로 없다고 하더구나. 당장 문제가 되는 몇 군데를 손봐줄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된다며 노화 자체를 어찌할 수는 없다는 거야. 그렇다면 이제 너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인데…. 마음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단다.
파란색 경차로 운전을 시작한 후 두 번째 겨울에 눈길에서 아찔한 사고를 당했단다. 서너 바퀴를 길 위에서 돈 차가 도로 옆으로 미끄러진 거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행히도 내가 살아있었어. 차체가 작고 가벼워서 쉽게 미끄러지나 싶어 좀 더 무게감 있는 아이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만난 아이가 바로 너였어. 우리의 첫 만남을 기억하니? “나는 이제 막 공장에서 태어난 쇳덩이랍니다.”라고 말하는 신생아 같은 너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내 손이 떨렸단다.
너는 내게 단순한 이동수단의 의미 이상이었지. 차에게 이름을 지어 불러주는 차량 애호가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종종 네가 알렉산더의 부케팔로스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 아무도 길들이지 못했던 사나운 말 부케팔로스. 그 말을 길들인 사람은 어린아이였던 알렉산더였대. 그는 말이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날뛴다는 것을 알아채고 말을 태양을 향해 세웠다지.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없게 된 그 말은 더없이 고분 해졌을 뿐만 아니라 남은 생을 자신을 알아준 알렉산더에게 바쳤대. 그리고 수없이 많은 전쟁터를 주인과 함께 누볐다는구나.
우리가 함께 누빈 삶의 전쟁터가 그에 못 미칠까? 무시무시한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적들로부터 주인을 지켜낸 그 말처럼, 너도 매 순간 많은 적들로부터 나를 지켜줬지.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나들던 그 시절 매일 밤 너는 적들과 싸워줬어. 하루는 눈 쌓인 빙판길과, 하루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두꺼운 안개와, 또 하루는 우리를 오즈의 나라로 데려갈 것만 같은 괴력을 가진 바람과 싸우고 또 싸워서 나를 지켜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단다. 어느 밤 잠깐 눈을 감은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졸음운전을 했었지. 가드레일과 부딪친 후에야 네가 온 몸으로 나를 구했다는 것을 알았단다. 핸들을 돌려주지 않은 주인을 탓할 만도 했을 텐데 너는 아무 불평 없이 응급실 신세를 졌지.
산다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이 맘처럼 쉽지 않아서 주저앉고 싶을 때 아버지가 그러셨지. 아무 이유가 없어도 하루에 세 번씩 ‘감사합니다.’를 크게 외쳐보라고. 남의눈을 의식하니 어디 가서 외칠 데가 없더구나. 별수 없이 만만한 너한테 소리쳤잖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땐 나 혼자 외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듣고 있었네. 사실 그 ‘감사합니다.’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에게 할 말이었다는 것도 이제야 알겠구나.
알렉산더는 부케팔로스가 죽은 후 그 말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데 나는 그런 능력이 없어서 미안해. 이렇게 네 등을 쓰다듬으며 고마웠다는 말밖에 해 줄 수 없어서 미안해. 내 인생의 어느 한 페이지에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채워 넣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할게. 그리고 기억할게. 나의 부케팔로스는 마지막 뒷모습까지도 늠름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