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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19. 2022

까미와 냥이

 그녀의 집에 ‘까미’가 왔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며칠 동안 야옹하는 여린 소리가 들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날은 매서운 바람소리에 섞여 들리는 고양이의 소리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녀는 손전등을 찾아들고 집 주변을 살폈다.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상자 안엔 어리디 어린 새끼 고양이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힘없이 신음하고 있었다. 손전등 빛에조차 반응이 없는 그 어린것이 그대로 세상을 포기할까 봐 그녀는 서둘러 상자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상자 안에는 ‘생후 십일’이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이제 이 어린 생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녀의 집엔 십수 년을 같이 한 고양이 ‘냥이’가 있었다. 

 

 냥이는 그녀에게도 특별했지만 그녀의 딸에게 더욱 특별했다. 그녀의 딸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냥이를 만났다. 일에 쫓겨 바쁜 엄마를 둔 그녀의 딸은 엄마의 공백을 냥이와 함께 채워갔다. 그녀의 딸이 사춘기 소녀를 지나 성인이 되어가는 동안 냥이는 늘 집안의 활력소였다. 그런 냥이의 행동이 언제부턴가 점차 굼떠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냥이는 늙어가고 있었다. 근래 들어 부쩍 식욕도 떨어진 냥이의 심경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어린 고양이를 동물 보호소에 보낼 생각이었다.

 

 잠시지만 자신의 집에 머물게 된 어린 손님을 위해 그녀는 정성을 쏟았다. 눈물범벅으로 얼룩진 얼굴과 찬바람에 헝클어진 털을 손질해주고 나니 제법 귀티 나는 고양이가 됐다.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인지 어린것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자꾸만 그녀의 마음이 동했다. 예방 접종을 위해 어린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갔던 그녀는 자신의 품 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든 그 어린것에 반해 같이 살기로 결심을 하고 말았다. 처음 데려왔을 때는 갈색 털이었는데 점점 까만색으로 변하는 게 신기해서 '까미'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냥이와 까미는 한 지붕 아래 살게 됐다. 


 냥이는 사랑을 나눠 가질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미 노화로 느려진 몸뚱이를 바닥에 깔고 누워서 어린것이 잰걸음으로 부산 떠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노려보곤 했다. 멋모르고 까불대는 어린것의 치명적인 애교에도 냥이는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싫은 마음을 담아 한번쯤 날카로운 소리를 낼 만도 한데, 남은 힘이 없어서인지 냥이는 그저 고개를 돌려 무시할 뿐이었다. 냥이는 점점 더 무기력해져 갔다.

 

 까미는 하루가 다르게 예뻐졌다. 날마다 하나씩 새로운 재롱을 떨었다. 그녀는 그 재롱에 흠뻑 빠져들었다.  마치 늦둥이를 키우듯 집안엔 장난감이 늘어났다. 큰 소리 날 일이 별로 없었던 그녀의 집을 웃음소리가 채웠다. 그녀의 사진첩은 까만 고양이로 채워졌다. 하루 종일 어린것이 눈에 아른거려 퇴근시간만 애타게 기다리기도 했다. 그녀 옆에 파고들어 보드라운 털을 비벼대는 어린 생명체와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까미가 온 지 한 달이나 지났을까. 냥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자꾸만 누워 자는 냥이를 들쳐 안고 몇 번이나 병원을 다녀도 소용이 없자 그녀는 불안해졌다. 남들은 고양이로서는 천수를 누렸다고들 했지만 그녀는 아직 보낼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게다가 새로운 식구에게 맘이 팔려 제대로 돌보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함까지 겹쳐 그녀는 마음이 무거웠다. 까미는 자신을 냉대하는 냥이가 무섭지도 않은지 자꾸만 냥이 주변을 맴돌았다. 죽은 듯 누워있는 냥이의 볼에 제 볼을 비비며 야옹야옹 말을 시켰다. 그러면 냥이는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올리며 가만히 까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냥이는 회복되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냥이 곁에서 그녀의 딸도 꺼억꺼억 거친 울음을 토했다. 한 생명이 꺼져가는 무거운 공기 속에서 가볍게 몸을 놀리는 건 까미뿐이었다. 그녀의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냥이의 마지막 눈빛이 까미를 향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른 체 촐싹대는 어린것에게 냥이가 남겼을 무언의 유언이 그녀는 궁금했다. 냥이의 거친 숨이 잦아들면서 얼굴도 편안해졌다.  

 

 그렇게 그녀의 집에서 냥이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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