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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14. 2022

동행

 이른 아침 핸드폰 문자 알림이 울렸다. 집을 나선 지 얼마 안 된 남편이 보낸 것이었다. 출근길에 인상적이라서 찍었다며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손수레를 밀고 가는 한 할머니의 뒷모습. 수레 안에는 폐지와 박스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 박스 위에 제법 큰 누런 개가 앉아서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사진 길을 오르느라 온 힘을 다하는 할머니가 안쓰러운 것인지, 아니면 제가 지쳐서 맥이 빠진 것인지 그 누렁이의 표정이 아리송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누런 개 ‘해피’가 떠올랐다. 덩치에 비해 순한 눈을 가진 ‘해피’는 한 번도 내게 눈을 치켜뜬 적이 없었다. 햇볕 잘 드는 뜰방에 배를 깔고 가만히 주인을 바라보던 ‘해피’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더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해피’는 순둥이인 데다가 겁도 많았다. 당시엔 동냥을 하러 다니는 낯선 이들이 종종 마을에 나타나곤 했다. 그들이 어린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퍼져서 동네 아이들은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대문을 걸어 잠갔다. 동네에서 첫 집이라 그 낯선 이들은 우리 집 대문을 먼저 기웃거렸다. 언제나 나보다 빨리 그들을 알아챈 ‘해피’는 온 힘을 다해 짖어댔는데 그 짖는 소리가 주인을 지키겠다는 의지보다는 무서워 죽겠으니 살려달라는 절규 같았다. 나는 낯선 사람보다도 ‘해피’의 부르짖음에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에게 답을 보냈다. 

 “개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 대단하신걸. 개가 힘들까 봐 수레에 태우고 가시잖아.”

 남편에게서 다시 답이 왔다.

 “내 생각엔, 폐지가 날아갈까 봐 누렁이가 눌러주고 있는 것 같은데….”

 

 통학용 기차를 타고 언니가 역에 도착할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엄마는 걸어서 삼십 분 거리를 매일 마중 나갔다. 혼자는 무섭다며 그 겁 많은 ‘해피’를 데리고 다니셨는데 간혹 나도 따라나서면 ‘해피’는 앞서는 법이 없이 조용히 우리 뒤에 서는 것이었다. 우리를 보호하는 것인지, 우리의 보호를 받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진 속 할머니와 누렁이도 누가 누구를 돕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같이 가는 길이 덜 수고롭다면 그것으로 족한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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