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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이라는 말은 원래 책이나 신문, 잡지를 정기적으로 사서 읽는 행위를 뜻했다. 지금은 마음에 드는 서비스를 일정 비용을 지불하며 계속해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더 널리 쓰인다. 익숙한 단어지만 곱씹을수록 묘하게 무게가 있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내어주는가에 대한 질문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올해 5월이었다. 글을 함께 공부하던 문우의 권유가 계기였다. 처음엔 재미 삼아 해보려 했지만, 막상 브런치라는 공간을 둘러보는 순간 생각이 복잡해졌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미 날카로운 문장과 오랜 시간 다듬어진 감각으로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 작가라 해도 될 사람들, 혹은 이미 그런 이름표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왠지 주눅이 드는 느낌을 받았다.
손끝이 키보드 위에서 머뭇거렸다. 과연 내 글을 누가 읽어줄까. 내 문장에 귀를 기울일 사람이 있을까. 혹시라도 누군가 비웃지는 않을까. 쓰기도 전에 자조가 먼저 글감을 잠식했다. 글쓰기라는 것이 이렇게 나를 초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위축감이라기보다,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이 창작자에게 요구하는 무언의 기준, 즉 '이미 입증된 서사'를 따라야 한다는 압박감이 만든 일반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는 미처 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위축감이 조금씩 글쓰기의 동력이 되기 시작했다. 주눅이 든 감정은 때로 사람을 멈춰 세우지만, 어떤 순간에는 나아가게 하는 묘한 미세 진동이 되기도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정말 쓰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쓰고 싶었다’라고 담대하게 말했다. 잘 쓰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그냥 쓰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 마음을 붙잡자 비로소 문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읽어줄지 모른다는 불안 대신, 내가 지금 무얼 느끼는지를 솔직하게 적어보자는 결심이 앞섰다. 어쩌면 글쓰기의 첫걸음은 감탄도, 영감도 아니라 단순한 담대함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을 잠시 내려두고 나의 속도를 믿는 일 말이다.
물론 여전히 비교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뛰어난 글들이 쏟아졌고, 그때마다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이 감정의 근원을 탐색해야 했다. 단순히 개인적인 열등감인가, 아니면 플랫폼이 만들어낸 '좋아요'와 '구독자 수'라는 가시적인 성공 지표가 만들어낸 끝없는 경쟁 회로인가? 이전에는 그저 고수들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겠다는 단순한 긍정으로 치환했지만, 이제는 대가(大家)들의 성공 서사를 끊임없이 반복하게 만드는 이 디지털 환경의 구조적 한계를 의식하게 되었다.
글을 올릴 때마다 두려움은 미세하게 흔들리며 되살아난다. 그러나 이제는 그 두려움조차 나쁘지 않다. 마치 새로운 구독을 시작할 때의 설렘처럼, 앞으로 어떤 연재가 펼쳐질지 모른다는 기대로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글의 독자가 얼마나 될지, 어떤 반응을 받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계속 쓰고 싶은 충동은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 마치 헤어 날 수없는 깊은 중독자처럼. 이 중독은 순수한 창작의 기쁨에서 온다기보다, 어쩌면 나도 저들처럼 '선택받고 싶다'는, 플랫폼에 길들여진 인정 욕구의 달콤한 덫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나 자신을 구독하는 과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매달 비용을 지불하듯, 매일의 시간과 마음을 조금씩 바치며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보는 것이다. 그 결과가 훌륭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닿지 않아도, 일단은 내 삶에서만큼은 분명한 가치가 있다. 이 '나만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이미 성공한 패턴과 흐름에 쉽게 중독되도록 설계된 플랫폼의 관성에서 벗어나 나의 길을 걷는 유일한 저항 방식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린다. 누군가의 비웃음보다 나의 작은 진심이 조금 더 크게 들리기를 바라며, 서툴더라도 한 줄씩 써 내려간다. 그리고 문장을 마침표로 닫는 대신, 다음 글을 향한 쉼표로 남겨둔다. 이 여정이 어디로, 얼마만큼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 길을 스스로 선택해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