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mbc '여성시대' 방송
네가 찾아왔다. 긴 세월이 서서히 너를 데리고 왔다. 먼 곳은 그럭저럭 보이는데 가까운 곳의 작은 글씨는 잘 보이지 않는다. 습도가 높은 장마철 아침. 조간신문을 보다가 화장실이 급했다. 돋보기안경을 벗어두기가 귀찮아 그대로 끼고 욕실에 갔다. 문득 거울과 마주치니 “아이코, 이게 누구야!” 깜짝 놀랐다. 웬 쭈글쭈글한 반백의 늙은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눈 밑에 주름이 선명하게 보였고, 이마의 주름살도 두 줄이 사이좋게 평행선으로 그어져 있다. 코에 주름도 만만치 않게 자라 있었고, 입가에 주름살도 여름철 장맛비가 지나간 도랑처럼 여덟팔자로 굵게 흐르고 있었다. 머리칼도 마찬가지였다. 검은색 속에 흰색이 채색돼 피부과의 스캐너처럼 또렷이 보였다. 평소 세안을 하고 얼굴에 바르는 건 스킨과 로션, 자외선 차단제가 전부다. 그래도 실눈의 속임수 인지 거울 앞에 서면 “음, 아직은 괜찮은데..” 스스로 짙은 위안을 하기도 했다. 오늘 처음으로 내 얼굴의 속살 모습을 자세히 보니 갑자기 마음이 우울해진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영화 관상을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관상만으로 사람의 기질과 운명을 파악하는 어느 관상가의 이야기인데, 일반적으로 관상학에서는 얼굴에 생기는 주름이 기회와 재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특히 이마에 일자 주름이 세 줄로 나있으면 아주 좋은 관상이라고 하니 내 이마에 약하게 난 두 줄도 조금은 좋은 것이 아닌가? 의미 없는 웃음을 지어본다. 업무차 안동 전통시장에 갈 일이 있었다. 안동 시청 관계자는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화회 탈 액자를 기념품으로 선물했었다. 아홉 개의 작은 하회탈로 제작했는데 자세히 보면 익살스러운 미소가 똑같은 것이 없다. 입가에 깊게 파인 주름도 서로 다르지만 볼 때마다 웃음 짓는다. 내 얼굴에 생긴 주름도 누군가 바라볼 때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세탁소에 맡길 옷들이나 양복을 제외하고는 자주 다림질을 한다. 요즘은 서서 하는 다림판이 있어 한층 편하다. 앉아서 셔츠 몇 개를 다림질하고 나면 발끝에 쥐가 나고 무릎이 아파진다. 스팀다리미가 쭈글쭈글해진 옷을 치~익 하며 지나가면 이내 주름이 펴진다. 편편해지는 옷을 보면 속이 후련해진다.
최근 연세가 지긋한 분들의 주름 펴기 신공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단다. 텔레비전을 출연한 연예인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거의 없다. 도대체가 나이를 알기 힘들다. 자신이 원하는 얼굴로 사는 것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게 좋은 게 아닌가. 서울의 거리를 걷다 보면 지나치는 얼굴들의 특징이 없다. 내 눈엔 다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 미모도 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인가 의문이 든다. 적당히 주름이 있어야 현실의 사람으로 보인다. 자연스러운 게 좋은 것이다. 깊게 팬 나의 주름에 핑계를 대본다.
주름 생각을 하니 인터넷에서 읽은 글이 떠오른다. 미국의 어느 대학 강의에서 일어난 재미난 일화였는데 교수가 학생들을 향해 ‘10달러’ 지폐를 보여주고 물었단다. “이게 얼마지요?” 학생들은 모두 ‘10달러’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갑자기 지폐를 막 꾸긴 후에 다시 물었다. “그럼 이건 얼마지요?” 학생들 똑같이 대답했다. 교수는 급기야 구둣발로 지폐를 짓밟더니 또 이건 얼마의 가치가 있나요? 하고 물었다. 학생들은 마찬가지로 ‘10달러’라고 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맞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가치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 우리를 찌그리고 주름지게 해도 여러분은 변함없이 가치 있는 자기 자신입니다. 그만큼 자신은 중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웃음으로 생긴 주름은 나의 행복한 순간들이었고 고민으로 생긴 주름은 인생의 고민과 역경의 기억이다. 같이 걸어준 시간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주름을 주름잡으며 오늘도 어김없이 거울 앞에 선다. 나를 보고 있는 점잖은 분에게 한마디 한다. 내 얼굴에 주름이 피어 있으면 뭐 어때. 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