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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곱슬머리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반 곱슬’이다. 곱슬이라고 하기에는 덜 꼬였고, 직모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제멋대로 구부러진 머리.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애매한 선에 놓여 있는 나의 머리카락은 내 정체성과도 닮아 있었다.
까까머리 시절에는 몰랐다.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빡빡 밀고 나오면 언제나 ‘머리 없는 자유인’이었으니까. 그러나 머리가 자라면 숨어 있던 유전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앞머리는 하늘로 솟구치고, 옆머리는 제멋대로 웨이브를 탔다. 거울 앞에 서면 한숨부터 나왔다. “야야, 네 머리카락은 백만 불짜리다. 돈 주고 파마도 하는데 얼마나 좋노.”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지만, 내겐 와 닿지 않았다. 내 머리카락은 ‘백만불’이 아니라, 매일 아침 치러야 하는 ‘백만 번의 전쟁터’였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이렇게 속삭였다.
“야, 오늘은 제발 조용히 좀 있자.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시절, 친구들의 머리카락은 언제나 매끈했다. 바람이 불어도, 땀이 흘러도, 찰랑 찰랑 단정함을 잃지 않았다. 반면 내 머리는 바람만 스쳐도 벼락이라도 맞은 듯 우두두 솟구쳤다. 나는 그 꼴을 ‘벼락 맞은 청춘머리’라고 불렀다. 어쩌면 내 청춘 자체가 그 머리와 닮아 있었다. 매끈하게 뻗어 나가는 듯 하다가도 뜻하지 않은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고, 때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돌아보면 내 삶은 한 번도 계획대로만 흘러간 적이 없었다. 대학 진학도, 첫 직장도, 그리고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이별도 모두 내 계산 너머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엉킴’이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원하던 길을 놓쳤을 때 오히려 새로운 길이 열렸고, 빗겨간 인연 덕분에 더 귀한 사람을 만났다. 매끈한 직모처럼 반듯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다채로운 풍경이 내 인생에 스며들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는 꼬여도, 내 인생까지 그렇게 꼬인 건 아니잖아?’
이제는 거울 속의 반곱슬머리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 아침마다 드라이기로 설득해야 하고, 어떤 날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고집불통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삶과 닮아 있다. 완벽히 곧아질 수는 없지만, 나름의 곡선으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곱슬머리 덕분에 나는 내 인생을 새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직모가 아니라서 불편했던 지난날이 이제는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흔한 머리 대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머리, 그 곡선처럼 예측할 수 없던 내 삶. 거울 앞에 서서 빗을 들며 나는 오늘도 미소를 지어본다.
“야, 이 머리… 정말 백만불짜리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