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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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

잿빛 하늘이 깔린 추석 아침. 오늘은 부모님 산소에 가는 날이다. 비가 내려도 성묘는 미룰 수 없다.


고속도로는 성묘객들로 가득했다. 빗줄기가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고, 와이퍼가 일정한 리듬으로 앞을 쓸었다. 그 소리가 마음속 묵은 그리움을 두드리는 듯했다.


산 입구에 도착하니 동생 내외가 먼저 와 있었다. “형님, 우의 입으세요.”

준비성 철저한 동생의 한마디가 유난히 따뜻했다. 우리는 빗속을 함께 걸었다. 발밑은 질퍽했지만 마음은 차라리 고요했다. 함께 있다는 사실이 때론 위로가 된다.


능선 너머로 부모님 산소가 보였다. 벌초 덕분에 봉분은 단정했고, 초록 잔디가 부모님을 포근히 덮고 있었다. 과일과 송편을 차리고 술잔을 올리자, 신기하게도 빗줄기가 멎었다. 마치 하늘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아버지, 어머니, 올해도 왔습니다.”

그 한마디에 세월의 무게가 스며들었다. 송편가루를 묻히며 웃던 어머니, 단정한 한복 차림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새삼 느꼈다.


산을 내려오며 이름 모를 묘에도 잔을 올렸다. 누군가의 부모였을 그분께도 오늘은 같은 추석이니까. 비는 다시 내렸지만 마음은 흐뭇했다.


돌아오는 길, 이상한 평온이 밀려왔다.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안도감, 전할 마음을 전했다는 위안이 가슴을 채웠다.


이런 성묘 문화도 머지 않아 사라질지 모른다.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움만은 남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기억으로 이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회색구름 사이로 빗방울이 더 굵어진다.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이 계셨기에 내가 있고, 함께한 시간 덕분에 삶이 의미 있었다는 것. 그러고 보니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겠지. 그 생각이 불현듯 가슴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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