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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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

아내는 해마다 김장을 거르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 빼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라

“애들 먹이려면 해야지.”

그 말에 나도 끄덕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만 산다.

“그냥 사 먹으면 되잖아.”

내 말에 아내는 귓등도 스치지 않는다.

“둘이면 몰라도, 애들 줘야지.”


그런데 말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김치를 그렇게까지 좋아할까?

정작 우리 애들도 김치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다.

냉장고에 넣어주면 잘 먹는지 궁금할 정도다.


김장하는 날, 나는 아내를 도우려고 옆에서 슬금슬금 따라다녀 본다.

근데, 겉보기엔 별거 없어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이건 거의 ‘종합 노동 경기’다.

요즈음은 배추는 대부분 ‘절임 배추’를 산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남은 손질이 한가득이다.

우선, 큰 냄비에 멸치, 파, 배, 다시마, 무 같은 걸 넣고 푹 끓인다.

김장용 육수를 만드는 것이다.


육수는 마치 집안의 묵은 시간까지 끓여내는 것처럼 오래 끓여야 한다.

김치 양념용 육수를 만드는 것도 몰랐지만, 이렇게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줄 예전엔 몰랐다.

육수가 끝나면 양념을 만들 때는 손이 더 복잡하다.

쑥갓, 무채, 액젓, 생강, 매운 고추, 덜 매운 고추…

이 모든 걸 아내는 눈대중으로 섞는다.

“적당히”라는 그 말 하나에 수십 년의 경험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배추 속 넣기.

배추 한 장 한 장을 들어 올려 속을 쓱쓱 바른다.

해본 사람만 안다.

이 ‘쓱쓱’이 결코 쉬운 소리가 아니라는 걸.

빨간 대야 두 통에 가득한 절임 배추.

“몇 포기야?” 묻자

“스무 포기쯤?”

그런데 보기에는 서른 포기쯤 되어 보인다.

아내의 포기 계산은 늘 현실보다 순하다.


김장은 오후에 시작해서 밤 11시 반이 되어서야 끝났다.

정리까지 하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아들 몫, 딸 몫, 그리고 우리 몫을 나눠 담고 나니

아내가 허리를 잡는다.

“아이고… 허리야. 다리도”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도 아프다.

같이 거들다가 팔, 다리, 허리, 온몸이 다 아팠다.

이게 정말 해마다 할 일인가 싶다.

그래서 나는 또 묻는다.

“꼭 김장을 해야 하나?”

내 마음은 단순하다.

나는 현실적으로 살고 싶다.

편하게 살고 싶다.

힘들면 마트에서 잘 담근 김치를 사 먹으면 되지 않나.


그런데 아내는 아마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배추를 사고, 양념을 만들고, 밤늦게까지 김장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옆에서 팔을 주물러가며 거들겠지.


김장이 때로는 고되고, 때로는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만큼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임을 나는 아직도 배워가는 중인가 보다.


내년 김장 날,

나는 또 투덜대겠지만

아마 그 순간에도 가만히 아내 옆에 서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해마다 함께 이어가는

작은 겨울의 의식인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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