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여유 사이에서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by 글이로

퇴직 후의 삶은 마치 낯선 나라로 떠난 여행 같다. 익숙했던 풍경은 사라지고, 새로 만나는 일상은 설레면서도 어딘가 어색하다.


30년 넘게 출근 도장을 찍던 시절. 그때는 하루라도 빨리 그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아침마다 울리던 알람 소리가 증오의 대상이었고, 시도 때도 없이 참석해야 했던 간부회의는 늘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제는 그 시절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그때의 피곤함이 오히려 내 존재를 증명하던 시간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퇴직 후 처음 맞은 월요일 아침,

그날은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눈을 떠보니 세상이 조용했다. 누구도 나를 부르지 않았고, 휴대전화의 알림도 잠잠했다.


커튼을 젖히며 “이제 진짜 자유다”라고 속삭였지만, 마음 한구석은 왠지 모르게 텅 빈 듯했다. 그 자유는 생각보다 무겁고, 생각보다 쓸쓸했다.

조삼모사(朝三暮四처럼, 얻은 게 있으면 잃은 것도 있는 법이었다.


다행히 운이 좋아 지금도 나는 멘토로 일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자문 역할을 맡으며, 가끔은 대표들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한다.


일이 몰려올 때면 다시 예전의 긴장감이 찾아오고, 오랜만에 느끼는 ‘필요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그 열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길게 늘어진 침묵의 시간.

일주일 내내 조용한 날들이 찾아오면, 처음에는 여유롭다가도 이내 불안해진다.


늦은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신다. 노트북을 열어 메일함을 확인하지만, 새로 온 메일은 광고뿐이다.


업무가 없다는 건, 달리 말하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유의 시간 속에서 나는 점점 내 존재의 무게를 잃어간다.


그럴 때면 운동을 한다. 자전거를 타고 스쾃도 해 본다. 그리고 습관처럼 책장으로 손이 간다. 손끝에 걸린 아무 책이나 꺼내 읽기 시작하지만, 활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속에서는 자꾸 불청객 같은 생각들이 고개를 든다.

‘앞으로 일이 끊기면 어쩌지?’, ‘수입이 줄면 생활은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결국 책을 덮고,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게 된다.

젊을 땐 일에 지쳐서 쉬고 싶었는데, 이제는 일이 없어 지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늘 그렇게 간사하다. 하지만 아마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닐까. 욕심이 사라지면 삶도 멈춰버릴 테니까.


며칠 전에는 오랜 동료들과 만나 술 한잔을 했다. 그들은 여전히 회사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나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속박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경쟁과 목표가 있는 사람의 눈빛. 순간, 나도 다시 그 전쟁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번쩍 스쳤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 나의 전장은 이제 다른 곳에 있으니까.

요즘 나는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커피 향을 오래 맡고,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예전에는 느낄 틈조차 없던 것들이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일이 많고 적음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채우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그래도 아직은 미련이 남는다. 일이라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감각,

무언가를 해결했다는 성취감, 그리고 함께 웃던 사람들.

그 모든 게 내 삶의 질감을 만들어주었다.

지금은 그 질감이 조금 옅어졌을 뿐이다.


오늘도 나는 책장을 향해 손을 뻗는다.

이번엔 잡념이 생겨도 그냥 그대로 둔다.

걱정이 꼬리를 물면, 그 꼬리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 끝에는 어쩌면 또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며 나는 배운다.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도, 마음의 굴레는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아마도, 진짜 자유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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