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같은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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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

이사를 앞두고 ‘합방’을 하기로 했다.

각방 7년 차, 이제 와서 합방이라니.

결혼 초엔 숨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코 고는 소리만 들려도 혈압이 쿵쾅댄다.

리듬은 같지만 장르는 완전히 달라졌다.

각방을 쓰자고 말했을 때, 사실 꽤나 조심스러웠다.

‘이제 당신이랑 못 자겠어’라는 선언처럼 들릴까 봐.

직장 때문에 타지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방을 나누게 되었고,

아이들의 분가로 그게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각방을 써보니, 세상에 이런 평화가 있을까 싶었다.

한쪽은 불면증, 한쪽은 잠버릇.

그 미묘한 밤의 전쟁이 드디어 무기한 정전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이사를 앞두고 아내가 말했다.

“이제 방도 넓고, 난방비도 아까우니까 다시 합방하자.”

그 말에 나는 패전국의 장군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난방비’— 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낭만적인 K-부부의 언어인가.

사실 각방은 편했다. 침대가 내 세상이 되고,

자세는 걸리적거리지 않는 자유를 주었다.

하지만 대화는 줄었다.

문 닫고 들어가면, 그날의 소소한 이야기도 문밖에 남았다.

잠은 편했지만, 관계는 소리가 줄어든 라디오처럼 조금 멀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아내의 합방 제안이 의외로 반갑게 들렸다.

‘아직 나와 같은 방을 쓰고 싶구나.’

그 단순한 사실이 괜히 고마웠다.

물론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뭐… 난방비 아끼려면 어쩔 수 없지.”

사랑은 언제나 가장 현실적인 변명 뒤에 숨어 있는 법이다.

아무튼 합방은 시작됐다.

첫날 나는 콘센트가 가까운 침대 오른쪽 자리를 정성을 다해 닦아 놓았다.

예전엔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무언의

기 싸움을 벌이곤 했는데,

이제는 연합군 회담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여보, 당신 이쪽으로 와요. 충전해야지.”

세월이 스프링보다 먼저 꺼지면 사람은 이렇게 달라진다.

막상 함께 누워 보니 오랜 친구가 연인이 된 것처럼 어색했다.

서로의 숨소리에 예민해지고, 근데 이상하게 그 어색함이 나쁘지 않았다.

아내가 뒤척일 때마다 이불이 살짝 흔들렸고, 그 작은 움직임이 묘하게 안심을 주었다.

‘그래, 이게 집이지.’

내친김에 팔베개도 해 봤다.

근데 팔이 많이 저리다. 근력이 줄어든 탓인지.

30초 만에 포기선언이 나왔다. 그 순간

"평소 하는 대로 해야지' 그 말이 떠오르며 어색한 웃음이 났다.

그래도 우리는 한 세대를 넘게 산 부부다.

이 분위기도 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정 불편하면 다시 원상 복귀하면 되니 문제 될 것도 없지 않은가.

문득 친한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나이 들면 싫든 좋든 같은 방을 써야 해. 우린 큰방에 싱글 침대 두 개를 들였어.

갑자기 몸이 탈이나 ‘밤새 안녕’ 할 수 있거든. 그런 나이야 우린.”

짠하지만 고개가 끄떡여졌다.


화장실 볼일로 새벽에 잠을 깼다.

무심코 아내를 내려다보니 평화로운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세월은 흐르고 주름은 늘었지만, 그 얼굴만은 여전히 포근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각방을 택했던 건 편한 잠을 위해서였지만,

합방을 택하는 건 편한 마음을 위해서라는 걸.


아침이 되어 아내가 물었다.

“어제 잠 잘 잤어요?”

나는 괜히 쿨한 척 말했다.

“뭐, 코 고는 소리에 두세 번은 깼지만 괜찮았어.”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당신이 이불 걷어차는 소리 때문에 두 번이나 깼어요.

발차기 소리만 들으면 거의 킥복싱 선수던데?”

그 웃음소리에 전날의 어색함이 사라졌다.


결혼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떨어져서 평화롭고, 다시 붙어서 시끄럽고,

그래도 그 틈에서 또 웃는다.

올겨울, 우리는 다시 같은 방에서 잔다.

코 고는 소리, 이불 뺏기, 익숙한 아내의 냄새,

늦은 밤 화장실 불빛까지. 그 모든 게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 소음들이 이제는 일상의 배경음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 소리가 다시 귓가를 간지럽힌다는 건,

우리가 여전히 서로의 곁에 있다는 뜻이다.

합방. 결국 나는 나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진짜 신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나 혼자만의 독백일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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