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량이 똑 닮은 우리 엄마
엄마 닮았어, 아빠 닮았어?
어렸을 때 의례 이렇게 물어보면, 나는 아빠를 닮은 쪽이었다. 성격도, 생각도. 아빠랑 유난히 유대감이 깊었기 때문에 그랬다. 하지만 커가면서 엄마를 닮은 부분이 하나 둘 생겼다. 그중 하나는 주량이었다.
나는 소주 3잔이면 알딸딸해지는 알쓰다. 엄마는 옆에 술잔만 놓여 있어도 그 술 냄새에 취해버리는 '슈퍼울트라알쓰'다. 엄마는 옆에서 맛있게 술을 마시고 있으면 "한 모금만" 이라고 말하곤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엄마에게 엄마가 기자였다면 훨씬 힘들었을 거 같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다. 근데 사실 소주 3잔이나 0잔이나, 술꾼들에겐 그게 그거다.
그러던 엄마가 최근에 갱년기에 왔다. 엄마들도 사춘기를 겪는다고 말하는 게 바로 갱년기. 월경이 사라지고 호르몬이 감소해 우울증 같은 게 생기는 시기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갱년기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거나 생각한 적은 없었다. 엄마가 어른인데 왜 챙겨야 하나 싶기도 했을 거다. 그런데 엄마는 부쩍 우울증이 심해졌다. 동생이 군대를 가고 더 그랬다.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혼자 생각에 빠져 있을 때도 많았다. 걱정이 됐다.
내가 갱년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연초에 정리정돈 전문가 황수연 대표를 만나고부터다. 황 대표는 집안을 전문적으로 정리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많은 고객들이 갱년기 여성이란다. 이들은 우울증이 심해 집을 거의 치우지 않는데, 정리정돈을 한 번 한 다음에는 갱년기 증상이 완화되고 웃음을 찾는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리정돈 전문가를 불러서 컨설팅을 받을까 하다가 생각보다 엄청난 비용(?)에 몸으로 떼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떠오른 또 다른 사람. 바로 리포터 이해솔님이다.
굉장히 얼마 전에 '솔룸'이라는 유튜브를 운영하는 이해솔 리포터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해솔 리포터 집에 가서 그가 꾸며놓은 집안 정원을 취재했는데, 진짜 너무 놀라울 정도로 집안이 예쁘고 싱그러웠다. 이런 집이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오밀조밀 단정하게 식물들이 놓여 있었다. 더구나 식물에게 주는 애정과 사랑도 남들과 달랐다.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지만, 인상 깊은 인터뷰였다.
그래서 나도 엄마에게 이해솔 리포터의 작은 정원처럼 집 안에 정원을 만들어드리기로 결심했다. 공간은 군대간 동생의 빈 방이었다. 군대 간 동생의 빈 방을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속상하지 않을까 싶어서 고른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짜잔.
동생 물건으로 가득했던 방은, 엄마를 위한 정원으로 변신했다. 물론 나 혼자만 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손재주가 좋은 둘째가 함께 해줬다. 수평을 맞춰서 가구를 조립하고, 엄마가 키우는 다육이들을 놓을 수 있게 창문 높이와 화분 정리대 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커피 머신, 매거진 랙을 활용해 커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오래된 책장은 일부러 버리지 않았다. 나름 화분과 배치하니 앤틱한 맛이 있었다. 또 라디오가 되는 블루투스 스피커도 비치했다. 우리 가족은 음악을 좋아하는데, 엄마를 위한 스피커는 이제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모두 감상하고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예쁜 흰색 소파도 샀다. 커다란 화분도 새로 키우시라고 엄마에게 선물했다. 엄마는 바로 주변에 자랑을 했다.
뭐, 술 칼럼에서 갑자기 인테리어 칼럼인가 싶겠지만 오늘은 주량이 꼭 닮은 엄마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술을 마시고, 즐기고,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린다. 그런데 가끔 내 주변 사람들은 그걸 몰라서, 혹은 어려워서 안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기자가 된 이유기도 하다. 어떤 걸 잘 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 멋진 경험을 보여주고 알려주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힘 쓰는 것. 엄마의 갱년기가 방 한칸으로 극복되긴 어려워도, '위대한(?)' 첫발은 아닐까. 또 이글을 빌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이해솔 리포터님, 황수연 대표님에게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