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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돌 기자 Feb 03. 2022

하향주가가 사라진다

1100년 전통 살려보려 했지만

대구는 전통주 불모지다.

이렇다할 전통주가 그리 많지도 않고, 새로운 술도 많이 나오질 않는다. 대구에서 술을 빚는 삼오전통주 대표님에 따르면 대구가 보수적인 지역이라서 그렇단다. 마시던 술만 마시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있기 때문에 새로운 술을 마시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고. 지역민에게만 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분석이었다.

그런 대구에도 역사가 깊은 전통주가 있다. 바로 하향주. 하향주는 무려 1100년 전, 신라 흥덕왕 때 마시던 술인데, 조선 광해군도 마시곤 칭찬을 한 술로 알려져 있다. 전통누룩, 찹쌀로 빚어 100일간 숙성한 약주인데 술에서 연꽃 향기가 난다고 해서 하향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동의보감>에선 하향주를 마시면 숙취가 없고 깔끔하다고 전해진다. 이 하향주를 대구 무형문화재 제 11호 기능보유자인 4대 박환희씨가 4대째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하향주가는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올해 3월 공장 문을 닫는다.

ⓒ 크라우디

그냥 지나치긴 아쉬워서, 하향주가에 전화를 걸어 박환희 대표님과 통화를 했다.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대표님은, "일흔이 넘은 나이고, 더 이상 술도 만들지 않을 거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지금 인터뷰하기엔 부담스러우시냐는 물음에, 대표님은 말을 더 붙이지도 않고 그저 그렇다고만 했다.

하향주가는 지난해 다시 되살리려는 노력을 했었다. 재정난이 심화돼 자칫 공장이 중국이나 일본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크라우디를 중심으로 하향주 복원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고 무려 3000% 달성이라는 목표 달성을 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크라우드펀딩으로 대구시에 민원을 넣는 분들도 있고, 당시 기사도 많이 나왔다. 그런데 결국 결말은 이렇게 됐다.


"지난해 되살리려는 노력, 하지 않으셨어요?" 박환희 대표님에게 물었다.

"마지막 도전이었죠. 마지막으로 만들어본 거예요." 그가 답했다.


많은 전통주 제조업체들이 등장했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자본주의 체계에선 당연한 수순이다. 하향주가도 마지막에는 주질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도 4대째 역사를 이어온 하향주가의 고별은, 왠지 모르게 섭섭하게 느껴진다. 공장 정리를 한 달 앞둔 지금은 아예 술도 만들지 않고 계신단다. 인터넷에서도 팔고 있지 않아 하향주를 구할 방법도 없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관리와 보존도 되돌아볼 때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K-드라마, K-음식 등 각종 K 열풍들 속에서 K-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소홀하진 않은지 짚어봐야 한다. 이제 하향주가 사라지면, 다시는 하향주가의 하향주를 맛보지 못하게 된다. 여러 논란을 미뤄두고서도 1100년 역사의 술, 무형문화재의 명맥이 단절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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