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용기를 부르나 실수를 부르나
'사람이 변하는 걸요 다시 전보다 그댈 원해요/이렇게 취할 때면 꺼져버린 전화를 붙잡고/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여보세요 왜 말 안하니/울고 있니 내가 오랜만이라서 사랑하는 사람이라서(후략)'
-임창정, <소주한잔>
술에 관련된 노래를 들어보면 유독 술 먹고 전남친, 전여친, 깨진 썸남, 썸녀에게 연락한 노래가 많다. 낮에는 자존심 때문에 잘 참았다가도, 밤에 마시는 술은 말하지 못했던 본심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술 먹고 용기를 내서 고백하는 사람도, 술 먹고 실수했다며 다음날 땅을 치고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술 먹고 기억이 안 나는 '블랙아웃'이 술 버릇인 사람은 술이 깨고 나서 찍혀 있는 부재중 전화에 흠칫 놀라곤 한다. 자신이 그 사람한테 전화를 건 기억이 없어서다.
#1. 수 년 전이었나. 매력적인 외모와 털털한 성격 탓에 남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여자친구가 있었다. 많은 남자들이 그 친구에게 고백을 했다가 까였는데, 그중 한 남자애만 유독 그 친구에 대해서 시니컬한 태도를 취했다. 자신은 쟤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느니, 다른 남자애들이 한심하다느니 등의 말을 하며 냉정한 모습을 유지했다. 다들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그 여자친구와 새벽까지 한강에서 놀면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여자친구의 휴대전화에 시니컬하게 응수한 남자애 이름이 떴다. 여자친구가 전화를 받자 남자애가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뭐하냐며 누구랑 있냐며 자기는 지금 술 마시고 있다며 미주알고주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낮에는 세상에서 제일 냉정했으면서 새벽에 술 먹고 전화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술이 본심을 불렀군'이라고 생각했던 일이다.
#2. 내 친구는 술 먹은 사람에게 고백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같은 회사 동료였던 남자는 매우 뜨겁고 열정적으로 사랑에 대해서 노래하며 고백했다. 한 번도 그를 남자로 생각해본 적 없던 내 친구는 그가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며 고백 이후로 설레는 마음이 생겨 다음날 'YES'를 준비해 갔다. 그런데 막상 다음날 술 깬 그는 친구의 반응에 떨떠름해 하며 "일단 사귀자"고 말했다. 친구는 사귀기로 한 이후로 하트 이모티콘도 쓰고 카톡도 자주했지만, 남자는 회사 내에서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따로 만나자는 말도 없이 시간을 흘려 보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3주도 지나지 않아서 그는 고백을 철회했다. "술김에 그랬어, 미안해" 이게 그의 응답이었다.
#3.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선 이별하면 꼭 헤어진 사람을 차단하는 사람이 있다. 헤어진 사람이 밉고 싫어서 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속내는 "술 먹고 전 여자친구에게 전화할까봐"였다. 술 먹으면 늘 정신을 잃는 탓에 자신도 모르는 말을 쏟아낼까봐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그의 머릿속엔 이미 전 여자친구의 전화번호가 남아 있는 상태. 차단한 노력도 소용없이 그는 결국 술 먹고 전 여자친구에게 연락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결론적으로 둘은 아직도 잘 사귀고 있다고 한다. 술이 용기를, 사랑을 불러낸 것이다.
'술김에'는 어떨 땐 참 비겁한 단어다. 하지만 술김에 일어난 '실수(?)'가 전혀 다른 결말을 만들기도 한다. 맨 정신이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는 '슈퍼맨'이라고 할까.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면 그런 실수도 한 번쯤은 해보자(물론 개인적으로 나는 고백은 맨 정신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날의 용기가 새로운 인연과 뜻밖에 사건을 만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