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위의 사랑, 박경리의 토지

by 다미

《토지》 속 인물 중 귀녀를 생각해 본다. 귀녀가 최치수를 유혹하려 하지 않고, 강포수에게도 잡아먹히지 않고, 아무런 괘씸한 짓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왜 악행은 다시금 선행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선행은 왜 또 다른 선행으로 나아지지 않는 것인가. 이런 울음 섞인 물음들 속에 폐허가 된 마음의 집을 세운 작가가 있다.


박경리는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장본인이다. 그 외 《김약국의 딸들》 등 다작을 하였고 2008년 별세하였다. 그런데 난 왜 토지만 보면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지 모르겠다. 토지 속 길상이도, 서희도, 임이네도, 용이도 내 눈에는 그냥 다 불쌍한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건 왜인지.


《토지》를 읽으면 눈물 대신 침이 고인다는 표현으로 슬쩍 둘러대기 쉽다. 왜 한국은 일본에게 잡아먹히고, 영화 파묘에서 나오듯 범의 허리가 끊겼던 건지 가슴 한가운데가 먹먹해서다. 그 시대를 살지 못한 나는 박경리의 토지를 통해 시대사를 배웠다.


왜 하필이면 박경리 본인이었을지, 이 모든 이야기를 꼭 써야만 하는 사람이 왜 자신이어야만 하는지 많이 심란했겠다 싶다. 통영에서 나고 자라며 너무나도 본인이 글을 써야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보고 자랐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애통했기 때문에 작품을 집필한 게 아닐까. 요즈음 나는 그 계보가 박경리에게서 최은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 중에 있는데,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같은 작품들 속에서도 비슷한 사랑의 계보를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박경리의 작품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면, 문학을 가볍게만 여기지 말아 달라는 점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단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펜이 칼처럼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그 말이 진리에 속한다면, 나에게 있어서 펜이 이기는 방식은 조금 다르게 해석될 여지는 있다. 펜은 튕기며 끌어안아 이기기도 한다.


《토지》는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분명 낯설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분량도 방대해서 도서관 서고에서 토지 시리즈를 마주하면 읽어보기에 엄두가 쉽게 나지 않긴 하겠다. 하지만 《토지》 는 우리 역사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그림과도 같다. 역사는 말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 나서야 겨우 보인다. 그러니 그것도 가장 폐허적으로 아름답게 묻어 놓은 박경리의 마을로 굳이 살펴 가는 지혜를 보여주기를 간곡히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