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먼 길을 떠나갔다. 그녀의 장례식이 끝난 후 그녀의 집에 갔을 때였다. 앞집에 사는 중년 남성이 찾아와서 말했다. "나라에서 환경보호상을 줘야 해요. 요즘 이렇게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녀는 미니멀리스트였다. 결과적으로는 환경을 보호하는 삶을 살았지만 환경보호를 하기 위해서 그녀가 미니멀리스트로 산 것은 아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미니멀리스트는 어떤 목적 등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완전히 억제하려는 사람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이 정의는 그녀를 정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미니멀리스트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고 미니멀 라이프를 동경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미니멀리스트라고 해서 모두 멋진 삶을 살진 않는다.
그녀는 목적을 위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완전히 억제하는 삶을 살았다. 리사이클. 리폼. 업사이클이란 단어를 몰랐지만 그녀는 고쳐 쓰고 또 고쳐 썼다. 물건을 살 때 딸려온 짧은 비닐끈까지 모아 놓고 썼다.
조각 양말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조각보와 조각이불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조각보는 선조들이 남은 천 조각을 이어 붙인 생활용품이지만 현대화가의 작품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멋지다. 요즘 조각이불은 멀쩡한 천을 잘라 만든 것으로 매우 비싸다. 하지만 이 조각 양말은 인테리어 장식용이 아니라 그녀가 실제로 신고 다니던 것이다.
양말에 난 구멍을 꿰매 신으면 꿰맨 자리가 불편해서 벗어버리고 싶다. 그런데 발가락 다섯 개와 뒤꿈치까지 덧대 기운 거라면 누가 신을 것인가. 어쩌다 잘못하여 짝짝이 양말을 신어봤을 것이고. 일부러 짝짝이 양말을 신은 사람을 본 적이 있겠지만. 조각 양말을 신은 사람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조각 양말을 신는 것은 어떤 일일까. 오래전에 구멍 난 양말을 기워 신고 나갔다. 둘째 발가락이 길어서 둘째 발가락이 닿은 곳에 구멍이 잘 난다. 얼마 신지 않은 양말이라 아까워서 기워 신었는데. 하필 그날 예기치 않게 신발을 벗어야 했다. 양말 기운 것이 표시가 났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른 양말 조각을 덧댄 것도 아니고. 바늘땀이 몇 개 드러났을 뿐인데.
그녀의 양말은 알록달록 화려하다. 이보다 화려한 양말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녀의 양말 한 짝을 살펴보면 다섯 발가락 부분에 덧댄 양말 조각과 뒤꿈치에 덧댄 양말 조각은 서로 다른 양말을 잘라 덧 붙인 것이다. 다른 양말을 잘라 덧댄 뒤꿈치 위에 또 다른 양말 조각을 덧대 기운 것이 있다.
양말 한 짝은 양말 세 짝이나 네 짝으로 된 것이다. 다른 한쪽도 이와 같으니. 양말 한 켤레는 여섯 켤레에서 여덟 켤레의 양말로 되어있다. 그녀가 양말만 덧대 기워서 신었다면 이 글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생활 전반에 걸쳐 모든 물건을 사용하는 것을 억제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코로나가 우리를 덮치기 전까지 살아온 그녀. 그녀가 젊을 때는 나라가 가난했고 사람들도 가난했지만. 그녀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나라 살림도 좋아지고 개인의 살림살이도 좋아졌다. 사람들은 이제부턴 실컷 먹고 옷도 제대로 입어보자며 이게 사는 거라며 살아갈 때. 그녀는 그녀만의 삶의 방식인 미니멀 라이프를 고수했다.
그녀가 새 양말을 사서 신을 형편이 안 되었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고. 양말을 사서 갖다 드릴 아들과 딸들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녀는 양말을 살 여유가 았었고 양말을 사서 갖다 줄 자식들도 있었다. 양말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얼마든지 사드릴 여유 있는 자식이 있는데. 그녀의 미니멀 라이프는 계속되었다.
젊은 날 그녀는 다짐을 했을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서 살리라고. 그녀의 마음속 다짐이 선택한 미니멀 라이프. 그녀가 좋아서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상황이 그래서 선택한 것일 뿐. 그녀라고 조각 양말을 신고 다니는 것이 자랑스러웠겠나만. 한 푼이라도 아껴서 자식에게 더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이겨냈을 것이다.
그녀의 미니멀 라이프를 중지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조각 양말 한 짝을 갖고 싶었다. 내가 안방에 갔을 때는 조각 양말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누가 치워버린 것이다. 그녀에 대한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조각 양말 한 짝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밀려온다.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미니멀리스트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애틋해지면서 아려온다. 눈물이 난다.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다가 갔는데도 말이다. 미니멀리스트 그녀는 내 시어머님이다. 나는 그녀의 맏며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