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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4]우물물 긷는 일

내 일일까?

by 할수 최정희


친구가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다.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내려보낸다.

두레박에 물이 그득 찬다. 들어 올린다. 양동이에 붓는다.

양동이에 담긴 우물물이 찰랑인다.


친구가 물 양동이 두 개가 걸린 물지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일어선다.

양동이가 기우뚱한다. 양동이의 물이 넘쳐 흐른다.


"힘들어서 어떡해?"라는 내 말에 친구가 대답한다.

"'내 일'인데 뭐." 이 대답. 불화살이었다.


45년 전 친구들을 만나러 고향에 갔다.

밤새워 친구들과 한 이야기들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이 친구의 대답. '내 일'은 낙관처럼 마음속에 찍혀있다.


우물물 긷는 일이 제 일이라니. 엄마 생각이 났다.

우물물 긷는 일은 당연 엄마의 일이었다.

우물물 긷는 일뿐 아니라 집안일 모두 엄마 일이었다.


'내 일'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일 같은 일을 '내 일'이라 여기며 살 수 없을 것 같다.


마당에 우물이 있었다. 엄마가 우물 속을 청소했다.

돌을 쌓아 만든 우물이었다.

우물에 있는 물을 다 퍼내고 난 뒤 엄마가 돌을 딛고 우물 바닥으로 내려갔다.


난 우물 위에서 엄마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우물 벽에 낀 이끼를 긁어내고 바닥의 나뭇잎을 주워 두레박에 담았다.

나는 두레박 줄을 잡고 두레박을 들어 올렸다.


우물 속을 청소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엄마가 돌을 딛고 오르내릴 때 미끄러질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우물 속의 엄마를 지켜보면서 이끼와 나뭇잎이 담긴 두레박을 들어 올리는 일은

신비로운 동화 속 나라 여행이었다. 엄마에게도 그랬을까.


결혼생활 내내,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러 올리는 일 같은 일을 해왔다.

이 일은 아름다운 동화 속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재투성이 신데렐라로 전락하는 일이었다.


재투성이가 되었지만 요정은 찾아오지 않았다.

세상에는 재를 뒤집어쓴 사람이 많은가 보다.

요정이 나를 찾아오길 기다릴 수 없다.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가 필요했던 것처럼 '내 일'을 찾아 길 떠나는

내게도 유리구두가 필요하다.


'내 일'이라는 45년 전에 꽂힌 불화살. 아직 타고 있으니

유리구두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구할 수 없으면 내가 만들 것이다.

유리구두에 나를 왕궁에 데려줄 기능은 필요치 않다.

왕자를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내 일'을 찾으러 가는 길이니까.


내 발에만 맞으면 된다.

내 발에 딱 맞는 유리구두를 신으면 어딘 들 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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