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다.
우리 집과 버스종점 사이에는 버스정류장이 세 개 있다. 집에 다 와갈 때 깜박 졸았나 보다. 눈을 떠보니. 버스가 종점에 도착해서 주차하고 있다.
벌떡 일어난다. 버스에서 내린다. 길가로 나온다.
눈에 보이는 것은
방향을 알 수 없는 외길. 국도와 깜깜한 하늘에 빛나는 별 몇 개가 전부다.
이곳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
가로등도 물어볼 사람도 없다.
낯익은 건물이라도 있으면 방향을 알 수 있지만. 아무런 특징이 없는 국도다.
방향을 잡고 걸어간다. 다리가 나와야 하는데.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방향을 바꿔 걸어온 길을 되돌아 걷는다.
버스종점 사무실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빛이라곤 이것뿐이다.
한참을 더 걸어가니 다리가 보인다. 마음이 놓인다.
50년 전의 일이다.
산다는 것. 버스에서 깜빡 조는 것과 같은 것일까.
정신을 차려보니. 어딘지 모르겠다. 세상의 길이란 길 모두 사라졌다.
외길 국도도 보이지 않은 깊은 밤을 맞은 사람.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린 흙수저라 한다.
이 사람보다 더 흙수저인 사람이 있다.
소용돌이 물속 세상에 갇혀서 그 자리에서 맴돌기만 하는 사람이다.
금수저란. 깜박 졸다 한밤 중에 깨어나도 세상 모든 길이 훤히 보이는 사람이다.
그가 가는 길마다 부모가 앞서 가로등 불 밝혀 놓은 사람이다.
멀리, 희미하게라도 건너갈 다리가 보이면 흙수저가 아니다.
건너갈 다리가 보이면 마음이 놓여서 마음이 놓인 만큼 마음이 가벼워져서.
"이까짓 꺼." 하며 다리를 향해 걸어갈 수 있으니까.
건너갈 다리가 아예 보이지 않으니 흙수저인 것이다.
햇빛이 쨍쨍한 대낮에도 길이 보이지 않으니 흙수저다.
흙수저 우리만, 내려놓지도 들 수도 없는 짐을 지고 사는 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
ㅇㅇ그룹 ㅇㅇㅇ 사망이란 뉴스를 보고 알았다.
사람에겐 부모가 켜줄 수 없는 가로등이 있다.
자신이 끌 수도 있는 가로등이 있다.
난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300만 년 전 두 발로 걷기 시작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남쪽 원숭이 사람에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인 슬기슬기사람에게까지 전해 내려온
그것.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은 내가 켜지 않았지만. 내가 끌 수도 있는 가로등이다.
내가 끄지 않으면 언제나 켜져 있는 가로등이다.
난 두 손을, 이 세상에 가지고 왔다..
세상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땐 두 손으로 뭐든지 할 거다.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인 슬기슬기사람. 내 조상이 내게 들려 보낸 것은
두 손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일.
그것이 우리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