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성을 쌓고 그 성을 굳건하게 지켜낸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정말 소수의 사람뿐일 것이다. 자신의 성을 지켜낸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바로 미니멀리스트 그녀다. 미니멀리스트 그녀가 쌓은 성벽은 단단하고도 높았다. 그녀의 성벽을 열 수 있는 사람도 넘어갈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성문을 열고 나올 뻔한 일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녀가 농사를 못 짓게 되었다. 그녀가 안방에 작은 TV를 들였다. 아침 저녁으로 깔개 위에 앉아서 TV를 시청했다.
그녀는 아침에는 아침마당을. 저녁에는 6시 내 고향과 KBS 일일 드라마를 즐겨 시청했다. 일일드라마가 끝나면 TV를 끄고 아래채에 내려가 잠자리에 들었다.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들기 전 새벽부터 일어나 농사일을 하던 그녀의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난 사건이다.
집과 논밭을 오가는 생활이 전부였던 가끔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러 가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 오는 것이 전부였던 미니멀리스트 그녀. TV를 시청하기 시작하고 나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그녀가 맏며느리에게 말했다. "요새 사람들은 옷을 많이 사 입더라. 옷 좀 사 입어라."라고. 그녀의 성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후 맏며느리가 그녀의 집에 갔을 때였다. "테레비는 테레비고 따라 하면 안 된다."라고
그녀의 성문이 도로 닫혀버렸다. 어느 해 겨울, 맏아들과 맏며느리가 그녀의 집에 갔다. 그녀가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녀는 빨간 무늬의 점퍼를 입고 작은 깔개 위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는데 들어가니. 냉방이었다. 스위치만 누르면 되는 가스보일러를 두고. 그녀는 냉방에서 TV를 시청해왔던 것이다. .
그녀가 거처하는 아래채로 TV를 옮겨 드리겠다고 해도 그녀는 막무가내로 싫다고 했다. 아래채에 있는 방에는 나무를 때 난방하기 때문에 난방비가 따로 들지 않는다. TV만 옮겨놓으면 그녀가 추위에 떨지 않고 시청할 수 있는데. 맏아들과 맏며느리는 TV를 아래채로 옮겨드리지 못했다. 그녀가 TV를 채 방으로 옮기는 것을 왜 그렇게 반대하는지 맏며느리는 몰랐다.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든 그녀. 맏며느리에게 "요즘 사람은 옷을 많이 사 입더라. 옷 좀 사 입어라."라는 말을 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을까. 다음에 맏며느리가 오면 "테레비는 테레비고 따라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하려고 얼마나 되뇌었을까. TV를 아래채 방에 갖다놓으면 그녀가 TV를 오래 볼 것이 뻔하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 그녀의 성문이 조금씩 열릴 것이다. 그러다가 활짝 열려버리면 어떡할 것인가, 그래서 그녀는 냉방에 놓인 작은 깔개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성을 지키기로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