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0] 미니멀리스트 그녀 10

추석 풍경과 그녀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

by 할수 최정희

결혼한 지 수 십 년. 명절 연휴 동안 한 번도 친정에 간 적이 없는 며느리가 있을까. 이러고도 아무 불평의 말이 없이 시댁 주방에서 기꺼이 일할 며느리가 있을까.


미니멀리스트 그녀의 맏며느리가 바로 명절 연휴 동안 친정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루뿐이던 명절 휴일이 늘어 사흘이 되었지만 맏며느리는 친정에 가지 않고 미미멀리스트 그녀의 집에서 보낸다.


수 십 년 동안 명절마다 친정에 한 번도 못 간 맏며느리가 그녀의 집에서 불평 없이 일을 하는 이유는 미니멀리스트 그녀로 인해서다.


추석날 오후엔 이웃집과는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그녀의 남편이 병들고 난 뒤 시작된 연례행사다. 그녀의 겨울 채비, 장작을 패기 위해서다. 나무는 그녀가 여름 내내 모아둔 것이다. 때론 새집을 지으려고 집을 헐어놓은 목재를 그녀가 얻어놓으면 아들들이 추석 때 리어카로 싣고 온다.


그녀가 골목이나 산 어귀에 땔만한 나무를 발견하면 찜해둔다. 추석 때 온 아들들이 그녀가 찜해 둔 커다란 나무를 들고 온다. 리어카에 실을 수 있는 것은 리어카에 싣고 한 아들은 앞에서 끌고 한 아들은 뒤에서 밀면서 집에 가져온다. 길가에 있던 나무를 모두 집으로 가져오면 그녀의 얼굴에 웃음기 섞인 안도감이 돈다.


그녀의 아들들이 도끼로 장작을 팬다. 어린 손자녀들은 톱으로 가는 나무를 자른다. 손자녀들도 도끼로 장작을 패고 싶다. 그녀의 아들에게서 도끼를 받아 들고 장작을 내려찍는다. 어린 손자녀들이 장작을 패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장작 패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잘못 찍어 장작이 날아간다. 몇 번을 내리쳐도 장작이 쪼개지지 않는다. 쩍! 장작 갈라지면 모두들 와~ 소리친다. 다시 아들들이 도끼를 받아 들고 장작을 내리친다. 모두들 소를 키우던 외양간으로 장작을 나른다. 겨우내 돈 한 푼 안 들이고 그녀가 거처하는 아래채 방을 따끈하게 데워줄 장작이 마련되었다. 그녀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애썼다."


늦은 저녁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그만이 아니다. 내일엔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다. 이 일도 그녀의 남편이 일을 못하게 되면서 시작된 연례행사다. 지붕 기왓장을 보수하는 일 같은 집안을 보수하는 일이다. 굴뚝을 고치고 아궁이 재를 퍼내는 일도 포함된다. 그녀가 추운 겨울 동안 군불을 땔 때 연기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그녀가 명절마다 자식들의 손을 빌리는 이유는 평소에는 자식들이 자신들의 밥벌이를 하기 바라서다. 또 장작을 패거나 지붕을 고치는 일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돈이 들기 때문이다.


설 연휴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녀는 이 일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녀의 아들들과 며느리들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명절에 일어난 고부간의 갈등이 남편과의 불화로 이어져 명절 끝에 이혼하는 사람이 많다는데. 명절에 친정 한번 가 본 적이 없어도 그녀의 맏며느리뿐만 아니라 다른 며느리들까지 명절 휴가가 끝날 때까지 기꺼이 시댁 주방에서 일한다.


며느리들이 효부라서가 아니다. 그녀에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일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그 무엇도 받기를 거절하는 부모도 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맏며느리는 미니멀리스트 그녀에게 이것이나마 해 드릴 것이 있어서 마음이 조금 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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