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5] 미니멀리스트 그녀 7

추석과 카멜레온

by 할수 최정희

미니멀리스트 그녀의 추석은 제사 전과 제사 후로 나눌 수 있다. 추석 제사 지내기 전 그녀의 집은 여느 집들과 다를 바 없이 며느리들이 주방에서 전을 부치고 생선을 굽는다. 추석 제사 후의 그녀의 집은 다른 집과는 완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 글은 추석 제사를 지내기 전 그녀의 추석 이야기다.


그녀는 주방과 마당 수돗가를 오가며 며느리들의 일손을 돕는다. 며느리들이 그만 두시라고 해도 그녀는 그녀의 몸이 움직여지는 한 이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추석 제사 지내기 전 그녀의 집이 다른 집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송편이 매우 큰 것이다.


그녀는 아래채 아궁이에 불을 때어 송편에 넣을 소로 팥이나 콩을 삶아놓고. 마루에서 쌀가루를 익반죽해 놓으면. 그녀의 남편과 아들들과 손자녀들이 함께 송편을 만든다. 손자녀들은 송편을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만든다. 그녀의 남편과 아들들은 송편을 주먹만 하게 빚는다.


세상에. 주먹만 한 송편이라니. 이렇게 큰 송편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맏며느리도 결혼 후 처음 맞은 추석 때 주먹만 한 송편을 보고 놀랐다. 송편이 크거나 작거나 그녀는 상관하지 않는다. 다시 아래채 아궁이에 걸린 솥에 물을 붓고 장작불로 물을 끓인다. 채반 위에 송편을 올려놓고 찐다.


다 쪄진 송편에는 옆구리가 터진 것. 소가 흘러내린 것들도 있다. 이 또한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참기름 물을 발라 제사에 올릴 송편으로 크기가 적당하고 모양이 예쁘게 잘 쪄진 것을 골라 따로 담아놓는다. 커다란 소쿠리에 주먹만 한 송편과 자잘한 송편, 옆구리가 터진 송편, 안 터진 송편 상관없이 담아 장독대에 올려놓고 식힌다.


드디어 송편을 품평하는 시간이 왔다. 가장 예쁜 송편을 찾는 것도. 그 예쁜 송편을 누가 만들었는지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모두 가장 큰 송편을 찾기에 바쁘다. "이게 제일 크다." "아니야. 이게 제일 커." 가장 크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가장 큰 송편을 찾는 것. 만만하지 않다.


송편 중에는 굵지만 길이가 짧은 것과 굵기가 작은 듯 하지만 길이 좀 더 긴 것이 있다. 이 두 개를 비교해서 어느 것이 더 큰지 결정하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지만, 그래도 하나를 결정해야 속이 시원해진다. 가장 큰 송편을 만들었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닌지라 어느 송편이 크다고 해도 딴지를 걸 사람이 없다.


가장 큰 송편이 결정되면. "내가 만든 거야." "그거 내가 만든 건데." "아이네. 내가 만든 건 이거다."라는 말이 오간다. 송편을 찌면 모양이 조금 바뀌기도 하고 터지기도 하여 자신이 만든 것을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다. 이렇게 하여 가장 큰 송편이 누가 만든 것인지 확인이 되면 면 가장 큰 송편을 만든 사람은 어깨가 우쭐해져서 "내꺼가 제일 크다."라며 활짝 웃는다.


그러면 주먹만 한 송편 맛은 어떨까. 각자 좋을 대로 큰 것 혹은 작은 것을 골라 먹으면서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 품평을 한다. 재료는 같지만 맛은 조금씩 다르다. 송편에 들어간 쌀가루 반죽의 양과 소의 양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손자녀들이 만든 것이 좀 예쁘기는 해도 주먹만 한 송편이 맛은 더 좋다. 소가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과 아들들이 송편을 크게 만드는 이유가 있다. 그녀가 미니멀리스트답지 않게 송편 재료를 많이 준비해 놓기 때문이다. 누가 하루 종일 앉아서 송편을 만들고 싶겠는가. 주먹만 한 송편을 만들어야 빨리 송편 만드는 일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매년 추석이면 맥시멀리스트로 변신하는 그녀. 송편 재료만 많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도 배도 귤도 상자째 사놓고 생선도 커다란 것들을 준비해놓는다.


누구든 생활방식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자식들을 잘 먹이기 위해서 추석마다 자신의 생활방식을 바꿔 풍성풍성 맥시멀리스트가 되는 그녀. 자식들이 돌아가고 나면 다시 미니멀리스트로 돌아가 미니멀하게 살아가는 그녀. 미니멀리스트라기 보다 카멜레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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