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7] 몸이 기억한다 2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by 할수 최정희

내 몸이 또 저가 알아서 스트레칭을 했다. 비몽사몽간 . 내 머릿속은 미토콘드리아이브에 대한 생각으로 출렁였다.


몸이 저가 알아서 스트레칭을 하는 건 알겠는데. '왜 머릿속이 미토콘드리아이브 생각으로 출렁거리지?' 란 의문이 들었다.


잠시 생각했다. 어제 미토콘드리아와 미토콘드리아이브에 관한 글을 읽은 것이 떠올랐다. 내 몸속에도 있는 미토콘드리아와 미토콘드리아이브에 대한 글을 쓰려고 읽은 것이다.


당장 미토콘드리아나 미토콘드리아이브에 관한 글을 쓸 수 없다. 이에 대한 개념이 머릿속에서 정확하게 정립되지도 않았고 숙성이 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아침에 내가 내게 여유를 주면서 발견한 것을 쓴다.


보통 여유시간을 갖는다면 거실이나 서재에 앉아서 따끈한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는 거라 생각한다.


나의 아침 여유 시간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누워서 빈둥거리는 것. 이것이 내가 내게 주는 여유였다. 이 여유가 내 몸이 알아서 스트레칭을 하게 하고 미토콘드리아이브를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체격이 왜소한 데다 체력 또한 약했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러니 아침마다 몸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문제였다.


일어나자마자, 출근 채비를 하고 아침밥을 굶어도 직장에 도착하면 출근시간 5분 전이거나 5분 후였다.

결혼 후에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 그것이 문제였다.


이 문제는 아침마다 주방에서 전쟁을 치르게 했다. 그때는 학생들은 모두 도시락을 사가는 시절이었고 고등학생이 있으면 도시락을 두 개나 사가야 했다.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 이유 중 하나는 매끼 새로 반찬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도 한 끼 먹을 수 있는 소량만 만들어서 먹는 습관 때문이었다.


내 입이 짧아서 그런 건데. 결과적으로 가족 모두의 입을 짧게 만들어버렸다. 아침에 만든 멸치볶음. 저녁엔 아무도 안 먹었다. 아침마다 주방에서의 전쟁은 내 탓이었다.


아침마다 일어나자마자 집안일을 전쟁 치듯 치러내야 해야 했던 나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배려는 누워서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워서 빈둥거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깨기도 하고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에 빠지기도 했는데. 10시가 될 때까지 혹은 12시가 될 때까지 빈둥거릴 때가 있었고. 어떤 날엔 오후 1시가 되기까지 빈둥거렸다.


어느 날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중에 알아챘다. 내가 으~~~~ 으~~~~~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그리 크진 않았지만. 으~ 으~ 소리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 듣는 가슴속 소리였다.


다음 날도 잠에서 깨어나는데 으~으~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뭘 의미하는 걸까. 가슴 저린 이 소리. 서럽고도 안타까운 이 소리의 정체가 뭘까.


우리는 의식하기 너무 위협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생각 혹은 감정과 기억과 경험들을 무의식으로 억압한다고 한다. 의식이 작동하기 전 비몽사몽 간엔 무의식이 작동한다고 한다.


으~ 으~ 소리는 여러 날 지속되었다.

기억하기도 싫고 떠올리기도 싫어서 무의식으로 밀어 넣은 것은 뭘까


으~ 으~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깰 때마다 으~으~ 소리를 내면서 같이 울었다. 알 것 같았다. 내 가슴이 왜 우는 지를. 그리고 알았다. 내 마음이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남동생 백일사진 찍던 날. 겨우 39개월이던 나. 아랫도리를 드러낸 남동생을 향해 말하던 친척과 동네 사람들의 말. 고추. 고추란 말에서 알아차렸다.


부모님의 사랑이 고추가 달린 남동생에게로 가버렸다는 것을. 이것이 나의 설움이고 아픔이다.


아버지의 병환 앞에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면서 꿈까지 포기해버린 것과도 연결되는 이 설움. 열아홉 살의 내가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었던 이유와도 직결된다.


인간으로의 삶을 놓아버리고 여성의 삶을 살아온 내게 내가 '너로 살아' '너로 살아'라는 외침. 왜 내 마음이 알아채지 못했을까.


'너로 살라'란 글을 쓰는데 울컥 눈물이 솟구치는 것은 진정으로 내가 나로 사는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다.


여성이어서 슬픈 것이 아니다. 인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인데 여성이어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인간으로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내가 어떻게 인간으로 살 수 있겠는가.


그냥 나로 살기로 한다. 나로 존재하게 해주는 것은 내 몸이다. 그래서 한 생명체로써의 내 몸에 대해 알아가려고 한다.




나의 설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에게. 추천하는 글입니다.

https://brunch.co.kr/@c63eebf80d7b4fe/35(백일사진)

https://brunch.co.kr/@c63eebf80d7b4fe/59(내가 잘 아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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