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최은영 작가가 쓴 '그림책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를 아무 데나 펴 읽었다. 마땅한 글감을 찾을 수 없어서 이 책을 꺼낸 것이다.
이 책을 산 이유는 그림책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림 욕심도 내겠지만. 그건 꿈에서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꿈은 현실을 반영하니까.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알사탕'이나 '나는 개다.' 같은 그림책 글을 쓰고 싶다. 가끔 그림책 알사탕을 꺼내 읽다가 백작가의 독특한 그림에 빠져든다. 약간 익살스러운 등장인물의 얼굴. 딱 그 표정이라 빨려들고 만다.
최 작가는 '진정성이 없는 글은 독자의 마음에 가닿지 못한다'라고 하면서 '진정성은 독자가 읽었을 때 느끼는 것이지, 작가가 스스로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진정성 있는 글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주제를 나답게 쓰는 것인데.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자신 만의 메시지를 담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사건과 감정을 섞어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백일백장 글쓰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 글감이 동이 났다. 매일 글감 하나 찾는 일. 수월하지 않다. 글감이 생각나서 그 글감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지만 쓰다 말 때도 있다.
최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 글감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주제인 것이다. 그 글감으로 나의 시선으로 나만의 메시지가 담긴 글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넣어둔다.
가끔 이렇게 저장해 둔 글을 꺼내서 처음부터 몇 번이나 읽어본다. 좋은 글감인데. 더 이상 글이 나아가지 않는다. 내가 감당을 못하는 것이다.
내가 감당 못하여 밀어 넣어둔 것은 이 글감만이 아니다. 사실 감당 못하는 것은 의외로 소소한 것일 수도 있다.
몇 달 전에 연근조림이 먹고 싶었다. 자주 가던 재래시장 채소가게에서 연근을 샀다. 연근의 흙을 씻어내고 보니 싱싱하지 않다. 연근을 깎아보니. 양끝이 말라가며 색깔이 변해있어 못 먹겠다.
연근조림을 못 먹게 되어 속이 상했다. 연근을 버릴려니 더 속이 상했다. 몇 천원이지만 환불해와야 그나마 덜 속상할 것 같았다.
채소가게 주인에게 연근을 보여주며 방금 산 연근인데. 이 연근 못 먹겠다며 환불해달라고 했다. 주인이 원래 그런거라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내가 연근을 모른다고 했다.
40년 주부 보고. 연근을 모른다고 한다. 참고 말했다. 이 연근 먹을 수 없으니 환불해달라고. 채소가게 주인이 말했다. 환불을 해주겠다고. 그런데 다시는 오지말라고. 부부가 합심하여 말했다.
나도 그 가게에 가고 싶지 않다. 잊어버리고 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안 되니까. 다시는 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안 된다고 마음에 담아두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다른 가게에서 채소를 사려면 그 가게 앞을 지나가야 한다. 깜박 잊고 그 가게에서 채소를 사면 안 되니까.
시장에 갈 때마다 연근을 모른다며 무시하던 채소가게 주인의 말을 떠올리고 연근을 못 먹어서 속이 상했던 감정을 떠올리게 되었다.
싱싱하지 않은 연근을 팔고 연근을 모른다며 나를 무시하던 사람들. 다시는 자기 가게에 오지 말라던 저 사람들은 잊었을 텐데.
연근 하나로 몇 달 동안이나 속상한 마음을 되새김질하며 살다니. 차라리 잊어버리고 그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편이 내게 더 나았겠다.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발가락이 채인 정도인 일인데. 두고두고 되새김질하는 나. 채소가게 주인의 말을 감당하지 못했던 거다.
몇 달 더 지나면 이 일을 잊을까. 이 일 깜박 잊고 그 가게에서 채소를 사는 나를 발견하고 싶다.
생태공예힐링핼퍼1호/ 할수
그림책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 최은영 지음. 클 출판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