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들어온 말이 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는 말. 이 말이 내게 닥친 현실이라는 걸 자각한 날이었다.
일분일초가 소중했다. 살아 꿈틀거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눈을 크게 뜨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가슴에 담았다. 가슴이 뭉클거렸다. 작은 돌멩이조차 다시는 못 보겠다 생각하니 자꾸 눈길이 갔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러다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날이었다.
살면서. 뭘 누렸나 생각해 봤다. 아무것도 없다. 빈 손으로 간다지만. 이 세상 사는 동안 실컷 누리고는 가야지라는 생각이 든 날이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도 돈 좀 벌어야겠다." "돈 벌어서 말라고?"라고 남편이 말했다. "맛있는 것도 실컷 먹고."라는 내 말을 듣던 남편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할 말이 더 있는데. 남편이 "맛있는 거 있긴 있나?"라고 되물었다.
"왜 없어. 한 끼에 오십만 원짜리도 먹고. 백만 원짜리도 먹어봐야지."라는 내 말에 남편이 말했다. "고기를 먹나 생선을 먹나. 먹을 줄 아는 게 있어야지. 오십만 원짜리든 백만 원짜리든 먹지."
그렇다. 고기를 먹지 않은 내겐 한 끼에 백만 원짜리 밥상. 산해진미가 놓여 있어도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풀잎 몇 장이다.
우리가 백만 원짜리 밥상 앞에 앉았다 치자. 곧바로 숟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먹어치웠다고 하자. 백만 원짜리 밥상을 누린 거라곤 말할 수 없다. 그냥 배를 채운 거지.
어떻게 하면 백만 원짜리 밥상을 누렸다고 할 수 있을까. 우선 어떤 음식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다음엔 음식마다 어떤 재료가 들어있는지 알아보고. 그 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아보고 각 재료가 어울려 어떤 맛을 낼지 상상도 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 어느 음식을 먼저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먹기 전에 잊지 않고 추억 사진도 찍고 음식 하나하나를 혀끝으로 음미하면서 먹었다고 끝이 아니다.
이 음식이 있기까지 수고해 준 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만든 이에게 감사 인사 한 마디 했다고 해서 백만 원짜리 밥상을 누렸다고 할 수 없다.
햇빛과 물과 바람과 구름이 없었다면 이 음식이 있었겠는가. 백만 원짜리 밥상을 누렸다고 하려면 우리의 밥이 된 벼가 느꼈을 햇빛과 물과 바람과 구름을 느껴도 보아야지 않겠는가.
이 세상 누리는 것. 백만 원짜리 밥상 누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눈여겨 살펴볼 때. 그것들의 멋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그것들의 아름다움이 가슴으로 흘러들어올 때. 내 가슴에 그득 찬 아름다움이 흘러넘쳐서 바깥으로 향해 흘러갈 때
우리가 이 세상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느낌을 그림이나 글 혹은 춤으로 표현한다면 이보다 세상을 충만하게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가슴으로 벼의 뿌리를 보듬어 준 흙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감싸 안아주는 다정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이 또한 이 세상을 누리는 것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있는 말이다.
"내 집 앞마당에 부는 바람이 모공 하나하나 스쳐간다네. 내가 곧 죽는다고 생각하면 코끝의 바람 한 줄기도 허투루 마실 수 없는 거라네."
바람이 모공 하나하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는 이어령과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는 사람 이 둘 중에서 이 세상을 더 많이 누리는 사람일까.
이어령이다.
이 세상을 누리는 일. 돈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코끝의 바람 한 줄기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지금 내 코끝에 머무는 바람. 한 그루 나무였을 수도 있고 한 포기 풀이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가는 것이다.
내가 바람이 되어 누군가의 코끝에 머물 수도 있다는 걸 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