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7] 엄마의 혼잣말

상처가 되다

by 할수 최정희


엄마는 텃밭에서 일을 했고 난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머리에 두건을 쓰고 긴 회색옷을 입은 여자 두 사람이 마당에 들어섰다. 나중에 그들이 수녀라는 걸 알았다.



수녀님들은 유치원을 홍보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수녀님들이 엄마에게 유치원이 아이의 교육에 얼마나 좋은지 설명한 뒤 나를 유치원에 보내라고 했다. 수녀님들의 말을 들은 엄마는 나를 유치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된다고 거절했다.


얼마 후 나는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아버지가 나를 유치원에 보낸 것이다. 유치원에 갈 때 아버지가 자전거 앞 안장에 나를 태우고 데려다주었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었다. 앞에 무대가 있는 커다란 강당이 교실이었다. 강당 한쪽에 작은 걸상을 빙 둘러놓고 수업을 했다. 놀이터에는 그네와 미끄럼틀과 철봉이 있었다. 가끔 선생님이 우리를 데리고 나가 놀게 했다.


유치원에 갈 때 노란색의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녔다. 가방 속에는 출석부가 있었고 아침에 가면 선생님이 출석부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유치원에 가면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푸른 하늘 은하수.' 같은 동요가 들려왔다.


우리 집 조명은 호롱불이었고 전기로 작동하는 기계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없는데 노랫소리가 계속 들리니까 신기했다. 발표회를 한다고 무대 위에서 노래 연습을 했는데 발표회를 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느 날 나를 유치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되는데 아버지가 체면 때문에 나를 유치원에 보냈다는 불평이 섞인 엄마의 혼잣말을 들었다.


1960년 대 초 그때 우리 동네에서 내가 유치원에 다니는 유일한 아이였다. 엄마는 아무도 안 다니는 유치원에 꼭 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나를 유치원에 보내 속이 상했을 것이다. 나를 유치원에 보낸 뒤 더 빠듯해진 살림살이에 엄마가 힘들어서 그런 혼잣말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보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가라고 해서 간 것뿐인데. 내가 들을 말이 아니었다. 억울했다. 엄마가 직접적으로 내게 불만을 터뜨린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 한 것이었다.


그때 내가 억울함만이 아니라 다른 감정도 느꼈을 텐데. ' 내가 이랬구나.'라며 보듬어 주고 싶은데. 그때의 감정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딸이 말했다. 내가 종종 혼잣말을 했다고. 그 말이 상처가 되었다고. 처음 알았다. 내가 혼잣말을 한다는 것을.


자신을 알려면 거울이 필요하다. 자식이란 거울이 혼잣말을 나를 보여줬다. 딸아, 내가 한 혼잣말은 분명 네가 들을 말이 아니었다.


나를 유치원에 보낸 아버지를 탓하는 엄마의 혼잣말을 듣는 내 마음이 어떤지 엄마가 몰랐듯. 혼잣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내가 하는 혼잣말을 듣고 참담했을 딸의 마음을 모르고 살아왔다.


나의 혼잣말을 듣는 딸의 마음이 참담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나를 유치원에 보낸 아버지를 탓하는 엄마가 푸념할 때 내가 어떻게 느꼈을지 느껴진다


내가 보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라는 억울한 마음과 내가 가정 형편이 나아지게 할 수도 없고 또 엄마가 내가 유치원에 가는 것을 싫어해도 가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에 오는 무력감으로 마음이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삶의 고비마다 내가 느꼈던 무력감. 이때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네 사람들이 내가 유치원에 다녀서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유치원 다녀서'란 말이 듣기 싫었다고 했다.


왜 엄마는 그 말이 듣기 싫었을까 상각해 본다. 유치원이란 말을 듣는 순간 엄마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를 유치원에 보낸 아버지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이 재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녀 차별이 심하던 시절. 아버지가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딸인 나를 유치원에 보낸 것은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딸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지만 아버지 마음대로 나를 유치원에 보내기보다 엄마와 의견을 조율했다면 내가 더 행복하게 자랐을 것이다.


생태공예힐링핼퍼 1호 /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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