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1] 미나리꽝에서 놀다

우리는 갑부였다

by 할수 최정희





동네 아이들이 모여 뛰놀던 좁은 시골길 옆에는 미나리꽝이 있었다. 미나리꽝 건너편엔 개울물이 흘러갔다. 개울물 옆엔 버드나무가 커다란 자라고 있었다. 개울물에 놓인 돌로 만든 징검다리를 건너면 언덕길이 있었다. 언덕길을 따라 초가집들이 세 채 연이어 있었고 그 뒤엔 작은 산들이 연이어 있었다.


겨울에 미나리꽝이 꽁꽁 얼면 미나리꽝은 아이들의 놀이터다. 미나리꽝에는 네댓 살 아이들에서 때론 어른들까지 썰매를 타기도 하고 미끄럼 타기도 한다. 봄이 다가올 무렵 미나리꽝에 들어가 얼음을 밟으면 미나리꽝의 얼음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찍 소리를 낸다. 미나리꽝 얼음에 거미줄 같은 하얀 선들이 생겨난다.


얼음이 깨져 미나리꽝에 빠질까 두렵다. 하지만 미나리꽝 얼음에 금이 생기면서 나는 찍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얼음이 아래로 쑥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것이 신기했다. 또 얼음이 갈라지면서 생겨나는 하얀 선들이 재미있어서 미나리꽝에 들어가지 않고는 못 배긴다.


봄날이 가까워질수록 미나리꽝의 얼음이 녹아가면서 얼음 사이로 조금씩 물이 올라온다. 그러면 얼음 위를 살금살금 걸어 다닌다. 살금살금 걸어 다니 다니는 이유는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고 또 신발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는 것인데. 계속 살금살금 걸어 다니면 재미가 없다.


저도 모르게 얼음 위 물속으로 한쪽 발을 살짝 디밀어 넣어보게 된다. 신발 위로 물이 차올라 올 때 될 수 있는 한 높게 그러나 신발 속으로는 들어오지 않게 물속으로 발을 넣었다 뺐다 할 때의 긴장감이 놀이의 재미다.

그러다가 발을 조금 더 물속으로 집어넣으려다가 그만 신발 속으로 물이 흘러들어 오고 만다. 후회막급이다. 발이 시려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얼음이 얇아지면서 얼음 밖으로 미나리 잎들이 조금씩 더 드러난다. 아이들에겐 봄이 오는 신호라기보다 놀이터가 사라지는 신호다. 겨우내 신나게 놀던 놀이터가 사라져서 아쉽지만 아쉬운 마음은 잠시뿐이다. 얼음이 녹아 얇아져서 미나리꽝에서 놀 수 없지만 더 넓은 놀이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 놀이터는 바로 서두에서 말한 언덕길을 오르면 연이어 있는 작은 산들이다. 그때 우리 동네 아이들은 각자 날마다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수만 평의 놀이터를 소유하고 있었다. 재벌 집 자식이라도 수만 평의 놀이터에서 날마다 자유롭게 뛰놀 수 있겠는가. 그때 아이들의 부모는 가난했지만, 아이들은 모두 수만 평의 놀이동산을 가진 놀이터 갑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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