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2] 떡국을 먹으며 본 사주

질문과 목표

by 할수 최정희

2023년 새해 첫날이다. 떡국을 끓여 먹었다. 딸이 재미 삼아 인터넷 사주를 봐줬는데. 각자에게 조금씩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한바탕 웃었다.


육십여 년 전 섣달이었다. 토정비결을 봐주는 사람이 우리 집에 왔다.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이 토정비결을 보려고 모여들었다.


동네에 사는 친척 할머니의 토정비결을 볼 때였다. 그 사람이 친척 할머니의 생년월일시를 묻고는 채색이 된 한지로 된 그림책을 펼쳐 보여줬다. 남자 뒤에 한 여자가 서 있는 그림이었다. 친척 할머니에게 남편에게 다른 여자 곧 첩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 친척 할머니의 남편 즉 친척 할아버지는 첩과 다른 지역에서 아들딸을 낳고 살았다. 친척 할머니는 자신이 낳은 자녀들과 함께 살았다. 친척 할아버지는 설날 같은 명절이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만 왔다.


그 사람이 어떻게 처음 보는 친척 할머니의 남편에게 첩이 있는 것을 알아내는지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때 동네에는 첩이 있는 집이 여럿 있었다. 이들 모두가 친척이었다.


우리 작은할아버지에게도 첩이 있었다. 큰 할머니가 아들을 못 낳는다고 첩을 들였는데. 큰 할머니가 먼저 아들을 낳았다. 작은할아버지는 큰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작은 할머니는 아들을 낳았지만 곧 죽었다. 첩인 작은 할머니는 자신의 딸들과 함께 따로 살았다.


우리 작은할아버지는 아들을 낳으려고 첩을 들였지만 토정비결을 보러 온 친척 할머니에겐 아들이 있었는데도 그 남편인 친척 할아버지가 첩을 들였다. 또 다른 친척에게도 첩이 있었는데 아들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나보다 한 살 아래 남자애가 있었다. 그 애가 엄마라고 부른 사림은 매우 늙은 할머니였다. 그 애 엄마는 젊은 여자였다. 가끔 그 애 엄마인 젊은 여자가 오면 그 애가 무척 싫어했던 걸로 기억된다.


그때 그 애가 젊은 엄마를 왜 싫어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 애 엄마에 대해서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자라면서 그 젊은 여자가 씨받이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그 애의 젊은 엄마가 죽었는데 거적 같은데 싸서 지게에 지고 가서 묻었다고 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딸만 있는 집이었다. 방문을 여니 친구 아버지와 엄마와 배가 불룩한 낯선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친구에게 남동생 아기가 생겼다.


그 후 방안에 있던 배가 불룩하던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친구의 엄마는 나이가 많은 할머니라 아기를 낳을 수 없었다. 배가 불룩했던 낯선 여자에 대해서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 역시 씨받이라 생각되었다.


코로나가 시작될 때 떠나간 남동생 장례식에서 우리 작은할아버지의 첩, 작은 할머니가 낳은 딸 종고모가 왔다.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보다 몇 살 더 아래인 종고모가 말했다.


그때는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는데 먹을 것은 풍족했다고. 그런데 먹을 것이 부족하더라도 아버지와 함께 사는 친구가 부러웠다고. 또 첩의 자식이라 기를 펼 수 없었다고.


내가 기억하는 어린 종고모는 항상 눈을 내리뜨고 있었고 뭔가에 억눌린 듯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천진난만함이나 웃음기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아들을 못 낳아서일까. 첩이었던 작은 할머니도 기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쓴 이 일들은 조선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육이오가 끝난 후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 내가 태어나서 자란 동네에서 있었던 일이다.


고교시절부터 난 여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그 이유는 어릴 때 이렇게 여성들의 힘든 삶을 지켜본 것 때문일 것 같다.


사는 것은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론 원하는 것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결혼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 살아온 나. 살 날이 그리 길지 않은 나는 내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질문은 나는 어떤 존재 일까였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명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무 한 그루가 죽으면 썩으면서 분해되어 흙이 되어 다른 식물의 양분이 되기도 하고 압력에 의해 바위가 되는 것처럼. 나도 고정적이지 않고 변해가는 존재라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살기로 했다. 지금 여기서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과거의 일로 후회하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떠는 마음을 다잡았으면서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러다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내가 다른 그 무엇을 할 수 있게 될까?'로 질문으로 이어졌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내 목표다.


생태공예힐링핼퍼1호/ 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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