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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Jun 06. 2022

이 옷 리폼할까

마음 그릇

나는 종종 옷을 리폼해서 입는다. 살 때는 마음에 들었는데. 한두 번 입다가 '이걸 왜 샀을까?'란 의문이 생기는 옷이 있다. 품이 크거나 길이가 긴 옷은 수선하면 되지만,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은 버릴 수밖에 없다. 옷 색깔을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 옷을 고를 때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색깔이다. 색깔은 옷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에 이미지를 크게 좌우한다.                                             


내가 회색 재킷입으면 정말 노인처럼 보인다. 게다가 기분도 가라앉고 우울해지면서 드러눕고 싶어 진다. 내가 산뜻한, 붉은 계열의 재킷으로 바꿔 입으면, 훨씬 젊어 보인다. 어디든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다. 그 이유는 내가, 외출하고 돌아와도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 잔량이 98%가 남은  휴대폰 같아서다.

 

새로 산 옷인데 반품할 날짜는 지나버렸고 수선해도 입을 것 같지 않은 옷이 있다. 이 옷을 버리기 아까워서 입어 볼 때가 있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돌려 입어보며 궁리를 해도 도저히 입을 수 없을 것 같은 옷이 있다.

 

이런 옷처럼, 반품할 수도 없고 고치기도 쉽지 않은 나,  마음에 탐탁지 않은 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버릴까 말까 나를 고민하게 하는 옷, 아까워서 버리지는 못하고 다시 한번 입어본다. 거울 앞에 서서 바지는 바짓단을 접어 올렸다가 풀어내려 깨금발을 서보다가 바지통을 당겨 잡았다가 놓았다 해본다.  


재킷은 긴 팔을 접어 올리기도 하고 접었던 걸 풀어내리기도 하면서 어디를 어떻게 자를지 가늠해본다. 또 품은 어느 정도 줄이면 될지 양쪽 옆구리  부분을  잡고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요새 유행하는 루즈핏 옷이라 품이 크도 너무 크다.


이렇게 품이 큰 옷을 볼 때 종종 내 마음 그릇도 이 옷처럼 품이 넉넉해지면 좋겠다는 생각 한다. 마음 그릇이  큰 사람을 보면  부럽다.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 그릇이 큰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내 마음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마음 그릇에는  상큼, 발랄, 여유, 자존감. 행. 유쾌, 우울, 슬픔, 낙담, 절망, 배려심 같은 것들이 서로 얽혀 들어있다.


마음 그릇의 크기보다 거기에 무엇이 들어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큰 마음 그릇에 시기, 질투, 미움, 후회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있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이럴 땐 차라리 그릇이 작은 게 더 낫다. 나도 내 마음 그릇이 작아서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다.   

 

산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반품을 못하는, 리폼을 해도 입을 것 같지 않은, 버리자니 아까운 옷을 과감히 버리기로 한다. 이 옷과는 작별이다. 이 옷을 들고 씨름할 필요가 없다. 이 옷과  아까워하는 마음을  함께 버린다.


어? 내 마음 그릇에 여유공간이  기지 다.  마음이 여전히 터질 듯 비좁 지. 버리기엔 아까운 옷과 그 옷을 버리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마음을 버렸으면 그만큼 여유공간이 생겨나는 게 당연한데.  여유공간이 생기지 않 걸까.


 안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들어앉아 있을 때, 한 두 사람이 나가도 여전히 방안은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이유는 몸을 한껏 움츠리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엉덩이를 슬슬 움직이며 눈치껏 조금씩 방바닥을 나눠 점령해 버리기 때문이다.  


한두 사람이 더 빠져나간다 해도 방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앉을 여유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앉을 수 있는지에  마음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자리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자동적으로 일시에 사람들의 엉덩이가 슬몃슬몃  움직이면서 모두가 조금씩 빈 공간을 차지해버리기 때문이다.


만족, 기쁨, 따분함, 미움, 후회 등 우리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마음에서 한 감정이 빠져나가면 간에 남아있는 감정들이 서로 경쟁하며 남은 공간을 차지해버린다. 이때 어영부영하다가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밀려 만다. 다시 자기 자리를 차지하려고 비집고 들어가는 일은  매우 어려운데.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가장 자주  밀려나는 감정이 행복이다.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았을 행복이 기네스북에 오르지 못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행복이 좋지 못한 명성을 얻게 될까 봐 우리가 행복을 무조건적으로 감싸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화일이 일어나는 순간, 행복은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내게 억울한 일이 생기면, 내가 화를 내기도 전에 행복이 먼저 화를 내면서 뛰쳐나가 버린다. 내게 슬픈 일이 생겼을 때, 행복이 내보다 먼저 눈물 흘리며 사라진.


나는 행복이 어디서 울고 있을까 걱정이 되어 잠도 못 잔다. 때론 행복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느라 밥도 제 때 못 먹는다. "행복아, 내게 어렵거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나를 위로해 준 적이 있으면 말해 봐라. 내게 도움이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에 너는 사라졌어."


나는 행복 다. 내게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땐 모른 척하고 내게 좋은 일이 생길 때만 찾아오는 친구를 좋아할  없는 것처럼. 행복을 좋아할 수 없다. 내 마음 그릇이 종지라고 타박해도 어쩔 수 없다. 행복을 조금만 미워하라거나 용서해 주라는 충고는 필요치 않다. 난 내 마음이 흡족해질 때까지 행복을 미워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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