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세수를 하고 머리를 곱게 빗어 쪽을 쪘다. 그리고 부처님께 기도했다. "부처님요, 부처님요. 자는 잠에 데려가 주이소."라고.
그리고 가끔 서랍장의 노란 삼베 수의를 꺼내 살펴보았다. 좀이 수의를 갉아먹지 않게 하려고 서랍장 속에 담배를 넣어놓았다. 할머니는 자신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걸 이미 받아들였겠지만 난 죽음이 두려웠다. 그래서 노란 삼베 수의를 꺼내 바람을 쐬여 주고 말리는 할머니를 바라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결혼한 후였다. 큰 아들이 돌이 지나서 겨우 걸어 다닐 때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으로 갔다. 할머니는 큰 병을 앓으시지 않으셨다. 한 달 정도 약간 몸이 안 좋으신 것뿐이었다.
여느 다른 날처럼 초저녁에 할머니가 잠에 드셨다. 가족 중 누군가가 늦은 밤에 거친 숨을 몰아쉬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아버지와 엄마와 동생들이 밤을 세웠다. 할머니는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하고 새벽에 돌아가셨다. 그야말로 자는 잠에 돌아가신 것이다. 날마다 오랜 세월 동안 부처님께 기도한 덕일까.
80 살을 넘겨 사신 할머니.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부터 엄마에게 "저기 ㅇㅇ이 와 있다."혹은 "ㅇㅇ이 보인다."라고 자주 말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말한 사람들은 다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희미해진다더니 정말 그런 걸까.
할머니의 염은 할머니가 기거하던 방에서 이뤄졌다. 할머니의 몸을 만져보았다. 딱딱하고 차가웠다. 죽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죽음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할머니의 몸이어 서일 것이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묻힐 자리를 보여주었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 묻히는 걸 만족하셨다. 할머니 장례는 7-8일 장을 하였다. 장례 날짜를 받았는데 3일 장은 안 되고 2일 장이나 7-8일장을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2일 만에 할머니를 보낼 수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문상 온 사람들이 호상이라 했다. 그 시절에 80 살 넘게 사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호상은 없다.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은 가슴이 아프고 에인다.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부처님요, 부처님요, 자는 잠에 데려가 주이소."라던 할머니의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는 40년이 넘었다. 아침마다 백발을 빗어 넘겨 쪽을 찌던 할머니가 그립다.
생태공예힐링핼퍼 1호/ 할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