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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Jan 30. 2023

[100-91] 미니멀리스트 그녀 15

길고양이

미니멀리스트 그녀가 길고양이를 거두었다.


어느 이른 봄날 남편과 내가 그녀의 집에 들어설 때였다. 길고양이가 외양간 앞에서 햇빛을 쬐고 있었다. 근데   길고양이는 벌떡 일어서서 자리를 피해버렸다. 외양간엔 그녀의 땔감, 장작이 그득 들어있는데. 그녀는 이 외양간을 길고양이에게 내주었다. 길고양이는 그곳에서 새끼를 낳고 길렀다.


그녀가 먼 여행길을 떠난 이후에도 고양이들이 텃밭에서 뛰어다녔다. 우리가 마당으로 들어서면 다른 곳으로 피해 가버렸다. 또 다른 때는 우리가 그녀의 집으로 들어서면 고양이들이 외양간으로 숨어 들어갔다. 남편과 나는 고양이가 외양간에서 사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그 길고양이가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주었을 것이 때문이다.


하지만 고양이로 인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당에 생선 뼈들이 나뒹굴고 있기도 했고 또 담장과 마당에 고양이 밥그릇들이 엎어져 있기도 했다. 텃밭에 고양이 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녀가 떠나간 후  집을 팔기 위해 복덕방에 내놓았다.  첫째는 이곳으로 이사올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빈집을 관리하기 위해 오가는데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외양간으로 드나드는 고양이를 보거나 마당 여기저기 생선뼈들이 굴러다니고 고양이 밥그릇이 엎어져 있는 것을 본다면 집을  살 생각이 싹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또 텃밭에 널부러진 고양이 똥을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그래서 어느 날 외양간에서 고양이를 쫓아냈다. 외양간엔 문이 없었다. 그래서 대나무 발을 사용해 문을 가렸다. 그리고 벽에 네모 난 구멍들이 있었다. 이 구멍에 큰 돌을 놓고 그 빈틈을 흙을 개어 막았다.


그리고 몇 주일 후 다시 갔을 때 막아 놓았던 벽 구멍을 누가 도로 뚫어놓았다. 남편이 다시 벽구멍을 뚫어놓으면 고발하겠다고 써서 담벼락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벽구멍을 뚫은 사람은 앞집 중년 남성이었다. 그 남성은 우리가 고양이를 쫓아냈다고 불평을 했다. 그도 자기 집에 길고양이를 두기 싫어서 우리 집 마당에서 고양이 밥을 주고 생선을 던져 놓았으면서도 말이다.


우리도 미니멀리스트 그녀가 가까이 둔 고양이여서 몇 년을 그냥 두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에서 살지 않으니 고양이 뒤치다꺼리를 할 수 없다. 이 집을 팔기 위해서 더 이상 고양이를 살게 둘 수 없어서 우리 마음도 편치 않다고 했다.


그 중년 남성이 자신의 집에 고양이 집을 마련하고 고양이 밥그릇을 두기로 했다. 그런데 그 집은 마당이 거의 없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고양이가 노는 곳은 여전히 그녀의 집 마당과 텃밭과 뒤뜰이다. 이젠 생선뼈가 굴러다니지 않지만 길고양이는 여전히 외양간을 드나든다.


사람에게도 물고기를 주지 말고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길고양이도 다르지 않다. 길고양이가 사람에게 밥을 한 끼 얻어먹을 때마다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상실해 간다.


밥을 주는 사람이 고양이보다 오래 살아서 날마다 밥을 준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만약 멀리 이사를 가도 날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러 오겠는가. 가족에게 일이 생겨서 고양이에게 밥을 줄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에도 밥을 주러 오겠는가.


어떤 상황에서도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러 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밥을 주어도 괜찮을 수 있겠다. 나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려면 집에 데려가 같이 살면서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길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끝까지 책임을 지기 싫기 때문이고 상황이 안 좋아지면 언제든 쉽게 고양이를 내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다.


 사람이 밥을 주러 오지 않을 때  고양이의 마음은 어떨까.   야생성이 사라진 길고양이가 제대로  먹이를  잡아먹을 수 있을까.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가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하는 일인지 정말 길고양이를 위한 일인지 생각해 라..


나도 그 길고양이가 애틋하다. 하지만 그 길고양이를 집에 데려와서 키울 수 없다. 지금이야 그곳에 한 달에 몇 번이라도 가지만 그나마 집이 팔리면 아예 가지 않을 것이다.


앞집도 집을 내놓았다고 한다.  집이 팔려서 이사를 갈 때 그 중년 남성이 길고양이를 데려갈까 생각해 본다. 그 사람은 내 집 마당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도 싫어서  남의 집 마당에서  준다.  그러니까 그사람은 길고양이를  데리고 가서 함께 살 것 같지는  않다.


그 사람이 이사를 가고나면 이 길고양이는 혼자서  밥을 해결해야 한다. 이 일은 고양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사람은 자신이 동물을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일을 반대하는 나 같은 사람은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나도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반대해도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해 주는 것까지 반대하지 않는다.


인간이 주는 밥을 먹는 것이 길고양이의 행복일까. 몇 끼 굶다가 생쥐  쫓아가서   덮칠 때  , 그것을 뜯어먹을 때 오는  차오르는 희열과  흡족함느끼는 것이 길고양이의 행복일까. 길고양이는 어떻게 살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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