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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Jan 30. 2023

[100-90] 살아있는 존재일까

파도와 자갈과 나

남편과 미니멀리스트 그녀 시어머님이 살던 집에 금방 도착했다. 가스보일러 스위치를 켜는데 미니멀리스트 그녀가 생각난다. 그녀는 명절 때와 자식이 왔을 때나 보일러를 켰는데.


남편은 텃밭에  뿌릴  말린 귤껍질을  부순다. 고양이가 귤 냄새를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귤껍질을 텃밭에 뿌려 놓으면 고양이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바닷가로 나간다.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올 때 바닷물은 다른 날보다 짙고 푸르렀다. 바닷가에 바위에 걸터앉아 푸른 바다를 바라본다.  


하얀 파도가 우르르 밀려온다. 바위에 부딪쳐 튀어오르는 파도는 마르린 몬로의 치맛자락처럼 나부끼다가 사라진다. 파도들, 다시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고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처럼  좌르르 밀려왔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밀려온다.



잠깐 사이  화가 난  듯  르르르러렁  굴러오는 파도 . 해안가 자갈밭에 철썩 부딪친다. 자갈이 아프다고  촤르르 차르르  앓는다 . 


파도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차가운 바람에 입김이 안경에 서린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안경을 빼서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갈매기가 바닷속 커다란 바위에 앉아있다. 주위엔 비둘기 몇 마리가 날아다닌다.


바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일어서 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렇게 세 번째 자리를 옮겨 앉아서 사진을 찍는데, 문득 무릎에 올려놓았던 안경 생각이 난다. 안경을 찾아 일어선다. 어디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앉을 만큼 널찍한 돌멩이들이 생각보다 여러 개다. 돌멩이 몇 개를 점찍고 그 둘레를 샅샅이 살핀다. 아무리 훑어보아도 안경이 보이지 않는다.


몇 십만 원이나 주고 맞춘 다초점 안경이라 쉽게 발길이 돌아서지지 않는다. '저긴 아니야'라면서 찾아보지 않은 바위를 향해 걸어간다. 그 바위 앞 자갈 사이에 안경이 보인다. 안경이 떨어져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에 안경이 떨어져 있다.


바닷가엔 나 혼자뿐이다. 그러니 누가 안경을 집어 옮겨 놓았을 리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경이 왜 거기 떨어져 있는지 모르겠다.


파도가 하얀 물보라 일으키며 르르르렁 굴러온다. 파도는 왜 쉬지 않고 자갈밭에 철썩 부딪치고 또 부딪칠까. 자갈은 왜 촤르르르 촤르르 쉬지 않고 구를까.


파도와 자갈이 살아있는 존재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우리의 심장이 쿵쿵 뛰듯 파도가 쉬지 않고 철썩철썩거리는 것일 수 있겠다.  촤르르 촤르르 소리는 바다의 심장 뛰는 소리일 수도 있겠다.  


촤르르르 구를 때마다 자갈의 몸은 닳아 없어진다. 자갈의 몸이 닳는 만큼 조금 전까진 자갈의 몸이었던 것들이 바닷물과 섞여 파도로 되살아난다. 파도와 자갈.  여기까지가 자갈이고 저기까지는 파도라고 어떻게 잘라 말할 수 있겠는가. 파도가 바다이듯 자갈을 바다라고 한다고 하여 어찌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얀 파도가 어깨동무를 하고  굴러온다. 바위에 부딪친 파도가  마르린 몬로의 하얀 치맛자락으로 나부낀다. 철썩철썩 차르르 차르르 자갈의 심장 소리가  얼굴 피부에 스며들고  가슴으로 잦아든다. 이 순간 누가 나를 바다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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