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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Feb 20. 2023

[문장공부] 목적은 동력일 뿐이다.

 무엇을 바라보며 가야 할까

1) 원문장

아흔아홉 마리 양은 제자리에서 풀이나 뜯어먹었지.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놈은 늑대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저 멀리 낯선 꽃향기도 맡으면서 제 멋대로 놀다가 길 잃은 거잖아. 저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하는 놈이야. 탁월한 놈이지. 때로 몰려다니는 것들, 그 아흔아홉 마리는 제 눈앞의 풀만 뜯었지. 목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닌 거야. 존재했어?(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2) 나의 문장


제목: 목적은 동력일 뿐이다

1) 원문장

아흔아홉 마리 양은 제자리에서 풀이나 뜯어먹었지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놈은 늑대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저 멀리 낯선 꽃향기도 맡으면서 제멋대로 놀다가 길 잃은 거잖아저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하는 놈이야탁월한 놈이지때로 몰려다니는 것들그 아흔아홉 마리는 제 눈앞의 풀만 뜯었지목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닌 거야존재했어?(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2) 나의 문장     

이어령의 이 글을 읽는데  '너도 한 마리 양이잖아.'라는 말이  가슴을 훅 치고 들어온다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한 마리 어린 양이었다이어령의 말을 빌리자면 난 목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아흔아홉 마리 양 중의 하나였다     

내가 종교를 버렸는지 탈출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40년 동안 목자 뒤꽁무니만 바라보고 뒤따라 갔더니 내가 사라졌다난 호기심 많은 한 마리 양이 아니라나를 찾아 길을 떠난 양이다멀리서 날아오는 희미한 꽃향기 따라 나를 찾으러 가는 길이다.     

도중에 냇물을 만나면 어떠랴. 냇물을 건너기 위해 애써 신발을 벗지도 바짓단을 걷어 올릴 생각이 없다. 그냥 시냇물 속으로 첨벙  발을 딛고. 신발 속으로 차가운 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시냇물이 바지 아랫단을 적시고 차츰 무릎 위로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살아있는 나를 느끼고 싶다.     

'냇물 속에서 발을 들어 올릴 때 신발 속에 가득 든 물의 무게와 바짓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라 쓰다 말고. 눈을 감고 냇물 속에서 한 발을 들어 올리는 나를 상상해 본다. 어떤 일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인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냇물을 건넌 뒤 계속 꽃향기를 따라갈지 모르겠다.  새소리가 난다면  새소리를 따라갈 수도 있고 바람을 쫓아 산을 넘어갈 수도 있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꽃향기를 쫓아가다가 새를 만나도 괜찮고 바람을 쫓아가다가 꽃을 만나도 그만이다. 새를 만나면 새의 노랫소리를 들을 것이다. 활짝 핀 꽃을 만나면 그만의 독특한 향기와 색깔을 즐길 것이다.      

내가 한 경험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가만히 살펴볼 것이지만 어떻게 변해 가겠다는 결심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마음이 가는 데로 따라가는 것이 꼭 좋지만 않다. 마음이 결핍을 메우려고 앞뒤 상황을 안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반드시’ ‘꼭’ ‘절대’란 말은 고삐가 되어 우리를 옥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강렬한 목적 없이 길을 떠나도 괜찮다.      

목적 없는 것이 목적이 될 수도 있다. 목적 없이 길을 떠났다가도 목적이 생길 수 있다. 목적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 말자. 목적을 가지고 떠났다가 목적이 사라질 수도 있다. 목적이 사라졌다고 실망하지 말자. 자유롭게 사는데, 목적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반드시 목적을 이루겠다는 결심을 하기 보다 당장 길을 떠나는 게 백배 낫다. 목적을 이루려면 길을 떠나야 한다. 목적은  길을 떠나게 해주는 동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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