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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Mar 10. 2023

미니멀리스트 그녀 8

꾸번떡

미니멀리스트 그녀가 꾸번떡을 만든다며 석유곤로가 아닌 아궁이에 불을 지핀 후 가마솥에 기름칠을 했다. 이때는 맏며느리가 결혼 후 처음으로 맞은 설 전날 오후였다.     


꾸번떡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화전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화전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둥글 납작하게 빚어 진달래꽃이나 대추나 국화잎을 올려 기름에 지지는 떡이다.      


꾸번떡은 화전과 같은 재료와 방법으로 만들지만, 고명을 올리지 않는다. 작은 접시만 한 화전과 꾸번떡의 크기 차이는  달걀과 타조알 차이보다 더 큰 것 같았다.


그녀가 찹쌀 반죽을 둥그렇게 빚어 큰 가마솥에 넣고 지졌는데. 가마솥 밑바닥만큼이나 크고 두툼했다. 꾸번떡을 여러 장 만들었지만,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꾸번떡을 만든 찹쌀가루 반죽으로 화전을 만들려면 온종일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섣달 그믐날 밤 그녀가 만든 제사 음식을 차려놓고 묵은 제사를 지냈다. 설날 아침 제사에는 떡국을 올린다고 하였다. 설날 아침. 부엌 어디에도 떡국 떡이 보이지 않았다.


맏며느리가 그녀가 떡국을 어떻게 끓이나 생각하는데. 그녀가 꾸번떡을 자르기 시작했다.  가마솥에 떡국 국물을 끓이고 꾸번떡을 넣고 또 끓였다.


설날 아침 제사는 간소했다. 꾸번떡  떡국과 몇 가지 반찬이 전부였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꾸번떡으로 만든 떡국을 먹었다. 모두 맛있다며 잘 먹었다.      


그녀가 떡국을 커다란 그릇 가득 담아서 맏며느리에게 주었다. 친척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된 맏며느리는 떡국이 너무 많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맏며느리는 한 숟갈 떴다. 꾸번떡은 피자치즈처럼 늘어졌다. 입   속의  물컹한 떡이 벌레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된 며느리가 친척들 앞에서 뱉을 수 없었다. 맏며느리가 꾸번떡 떡국을  다 먹어갈 무렵이었다.    


그녀가 더 먹으라며 한 국자 가득 퍼서 맏며느리 그릇에 부어주었다.  맏며느리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맏며느리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고개를 숙이고  목구멍으로  올라 오려는 꾸번떡을  삼켰다.


이전엔 먹고 싶지 않을 땐  숟가락을 놓으면 그만이었는데.  그 자리에선 그럴 수 없었다.


맏며느리는 떡이나 떡국과 동지팥죽에 들어있는 새알심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싫어했다.


맏며느리가 신혼집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꾸릴 때였다.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억지로 삼킨 떡국 한 그릇. 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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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공예힐링핼퍼 1호/ 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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