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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May 14. 2023

가수 현미의 죽음

나도 금방 죽는다

며칠 전 가수 현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놀랐다. 내가 20대 시절, TV에서 젊은 그녀를 자주 보았다. 그녀의 노래 가슴을 울렸고 그녀는 당당했고 또 독특한 개성이 넘쳐흘렀다. 얼마전에 청년들 못지않게 에너지 넘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100세까지라도 왕성하게 활동을 할 줄 알았다. 그녀는 85세의 나이로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수명 86.5세에 못 미치게 살다 갔다. 나는 그녀의 노래 하나 할 줄 모른다. 그런데 그녀가 마음속에 턱 걸터앉아 떠나가질 않는다.


나는 내가  얼마나 살 수 있을까 계산을 해본다. 평균수명 86.5세까지 산다면 18년  정도 남았다. 건강해 보이던  그녀도 평균수명까지 못 살았는데, 내가 평균수명까지 살 수 있다고 어떻게 단정 짓겠는가. 내가 살아갈 날이 얼마나 될지 어림잡아 본다. 대략 15년이다. 가슴이 시큼해지면서 눈물이  솟아오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인다고 생각해 왔는데. 왜 눈물이 날까? 의사로부터 몇 개월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는 사람의 마음이 어떨까? 살아갈 날이 15년이나 남아있는데. 어쩌면 100살까지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눈물이 나고 가슴이 저민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오가며 휴대폰에서 브런치를 열고 이 글을 쓸 때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옆 자리에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기도 하고 이십 대의 여성이 앉아있기도 했는데. 콧물까지 줄줄 흘러내렸다.

 

한 번은 오지게 살아보고 싶어서. 환경에 휘둘린 삶이 안타깝고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아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누워서  유튜브를 시청하며 빈둥거릴 때가 많다. 테리 버넘과 제이 팰런이 지은 다윈이 자기계발서를 쓴다면'의 한 부분이다. 모든 동물은 다 게으르다. 진화의 눈으로 보면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생물은 죽는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 활동을 되도록 피하려는 조상들의 자손이며, 조상들은 자손에게 에너지를 아끼는 유전자를 물려주었다. 는 부분을 읽는데. 어릴 때 종종 듣던 말이 떠올랐다.


"배 꺼진다. 뛰지 마라." 내가 어린 시절엔  길을 가던 동네어른들이 철없이 뛰노는 아이들에게 "야야, 배 꺼진다. 뛰지 마라."라고 말했다.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들에게까지 왜 배 꺼진다고 뛰지 말라고 할까. 그만큼 먹을 것이 없어 굶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원시시대 사람들도 토끼 한 마리 잡기도 쉽지 않았을 테니, 배가 꺼질까 쓸데없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이 뛰놀면 배 꺼진다고 뛰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배가 꺼졌는데도 새로운 음식을 구하지 못하면 아프거나 죽을 수밖에 없다. 원시시대 사람과 동물들은 배가 꺼지지 않도록 가능한 움직이지 않는 게 최선일 수 있다.


사자가 맨날  뒹굴뒹굴거리는 것이 이해되고, 내가 누워서 빈둥빈둥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축내는 것도 이해가 된다. 사자가 에너지를 아끼라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사는 것은 매우 잘 사는 것일 수 있지만, 나는 그렿지 않다. 나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삶 속에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인데. 이 두 개의 질문은 하나의 질문이다. 죽음을 마주하면 고유한 내 삶이 우뚝 설 수 있다'라는 최진석 교수의 말을 떠올려본다. 최진석교수는 자주 '나는 금방 죽는다'라고 되뇐다고 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함부로 살 수 없다고 한다.  나도 '나는 금방 죽는다'는 말을 돼 내면 허투루 살지 않게 될까?


가수 현미의 죽음 소식은 나도 곧 죽는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내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구체적으로 계산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셈을 해보았다. 내일 모레면 칠순. 추수의 계절이지만, 꽃이 필지 말지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말지 염려하며 시간을 보내면 후회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씨앗을 뿌리고 물 주는 일에 집중한다면 웃으며 이 세상을 떠나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이 글을 썼다.  죽음을 생각하면 함부로 살 수 없다는 최진석교수의 말이 맞다. 죽음이 이 글을 쓰는 에너지였다. 참 아이러니하다. 죽음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라니!  또 유전자의 명령을 거스르게 하는 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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