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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Aug 06. 2022

포도 한 송이

그깟 게 아니다.

여우가 잘 익은 포도를 보았다.  여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포도는 너무 높은 곳에 달려있었다. 여우는 팔짝팔짝 뛰어보다가 포도를 딸 수 없자 "저건 신 포도야."라고  말하곤  가버렸다는 이야기다. 포도를 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아보지도 않고.

그깟, 포도 한 송이가 아니다. 삶에 대한 태도  문제니까. 여우는 뭐든 포기하면서 살아갈 게 뻔하다. 앞날이 까만 여우다.


발달장애청소년들과  복지관에서 스토리텔링 생태공예 수업을 할 때였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여우가 "어떻게 하면  포도를 딸 수 있을까?" 질문했더니. 한 애는 코끼리에게 부탁한다고 했고. 기린에게 부탁한다는 애. 사다리를 빌려온다는 애. 다른 여우를 데려와 목마를 탄다는 애. 포도를 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고삼 때 아버지가 폐결핵에 걸리셨을 때, 원하는 삶을 포기했다. 여우처럼 말이다. 꿈을 포기했는데  포기가 안 돼, 절망해, 죽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살게 되었다. 포기할래도 포기가 안 되는데. 왜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의 앞날도 여우처럼 까맸다.


삶의 고비마다 원하는 것이 있었고, 해야 할 것이 있었다. 난 그것들을  못할 이유를 족집게로 집듯 찾아냈고. 못할 이유를 대며 하지 않았다. 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내고, 포기하면서 사는 삶. 살고 보니 비참했다.


이렇게 살 순 없다고.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라고. 나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묵혀 두었던 내 꿈을 꺼내 살펴보았다. 휴면 중이었다. 말라죽은 듯 보이지만, 물 만나면 곧 파랗게 살아나는 이끼 같은 꿈. 내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파릇파릇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깟, 꿈이 아니었다.  포기했는데 포기가 안 되는 꿈. 그깟 포도 한 송이로 취급당한 꿈. 그깟, 꿈이라고 무시하면 나가떨어질 줄 알았는데. 너도 한번 울어봐라며, 내게 눈물의 화살을 날렸고, 그 화살은 내 심장에 꽂혔다. 자신이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꿈이 내게 그깟, 꿈으로 취급받으면서 어떻게 발 뻗고 잘 수 있겠는가.


꿈은 내게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싶었지. 내 심장을 울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니. 꿈, 저도 맘 편히 차 한 잔 마실 수 있었겠나. 파릇파릇 되살아나는 꿈. 내 가슴에 쏘았던 눈물의 화살을 거둬 갈까. 오래되어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화살을 빼낸다면, 꿈 저도 뭐가 돼도 될 것이다. 아더가 돌에 박힌 칼을 빼고 왕이 되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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